불기 2568. 10.27 (음)
> 종합 > 사람들 > 인터뷰
선소리 산타령 황용주 명창
머무는 듯 흐르는 ‘나대로’ 장구장단
사진=고영배 기자
일렬로 늘어선 소리꾼들이 고음의 우렁찬 소리를 질러대며 소고를 두드린다. 10명이 넘는 이들과 소리를 주고받는 무대의 주인공은 장구를 옆으로 세워 맨 모갑이. 그의 머무는 듯 흐르는 나대로 장구 장단에 온 나라 명산들이 치솟는 소리로 뻗어나온다. 그 상성(上聲)의 소리에 소리꾼들은 발림(손짓, 발짓을 섞은 동작)으로 화답하고 무대는 장구와 소고, 높고 꿋꿋한 소리로 신명나게 어우러진다.

국악의 색다른 정취가 느껴지는 이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소리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 위해 무대의 모갑이 소암 황용주(67·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 산타령’ 예능 보유자) 명창을 찾았다. 시조에 밀려 판소리에 눌려 그 이름 몇 자도 제대로 알리지 못한 민간의 소리 ‘선소리 산타령’에 50년 인생을 바친 소리꾼. 그가 장구채를 길게 뽑아내며 반 백년간 장구 속에 묻어놨던 소리 이야기를 굽이굽이 펴기 시작했다.

“서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산을 꿈꿀 수 있는 소리야. 조선팔도 산천경개를 어디서건 펼칠 수 있는 생명이 담긴 소리….”

황 명창은 선소리 산타령에 범어에 가까운 염불조가 녹아있는 것이 단순히 기법적 차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부처님을 간절히 생각하며 세상 시름 허튼 욕망을 한 마음에 놓아버리듯, 산수(山水)를 일념으로 오롯이 품는 마음은 곧 부처의 마음이라 했다.

그가 산타령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황희 정승 직계의 뼈대깊은 유학가 가문은 사리와 분별은 명확히 가르쳐 주었지만, 산수를 훑는 따뜻한 시선과 그 감흥에 깊이 침잠하는 내면의 소리에는 냉담했다. 그래서 그는 서당을 운영하던 조부의 강경한 뜻을 뒤로 하고 홀홀단신으로 상경, ‘청구고전서악원’에서 소리를 시작하게 된다.

소리계에서는 그 위상이 대단했던 이창배 선생의 문하제자가 된 황 명창. 그는 이창배 문하에서 가사, 시조, 경기소리, 서도소리, 선소리 산타령 등 소리라는 소리는 모두 다 배웠다. 정악이니 속악이니 하는 분류로 우리의 소리가 임의로 구분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 바탕은 하나라는 생각에서다. 통하는 것들은 다시 되짚어 봤고, 어긋나는 것들은 그 고유의 색을 다시 확인했다.

그렇게 기본을 닦은 황 명창은 이제 소리의 현장에 뛰어들게 된다. 다양한 소리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민요학원 등지를 유랑하며 뜨문뜨문 소리를 가르쳤다. 그리고 필생의 과업으로 삼은 선소리 산타령과 하나가 되기 위해 낮과 밤도 모르고 소리에 몰두했다. 두 옥타브에 이르는 넓은 음역의 높고 꿋꿋한 소리를 소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매일 새벽 4시 뒷산에 올라 2시간 동안 소리 내지르기를 3년, 잠도 밥도 잊어가는 것 같더니 어느 날 문득 산이 단전 아래 살며시 들어앉았다. 하얀 새벽에 눈물을 흘리며 살아있는 산을 끌어올리는 순간이었다.

황 명창은 거기서 안주하지 않았다. 풀빵 사먹기도 힘든 가난이 그를 옥죄었고 3년간의 전국 순회공연으로 빚쟁이만 22명이 따라붙었지만 마음에 들어찬 소리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선소리 사설 정리다.

“원고지와 오선보 8천장이 쌓였어. 그런데 양이 문제가 아니었지. 알 듯 말 듯한 불교용어는 물론이고 중국 고사를 모르면 풀어낼 수 없는 구절이 상당했어. 그래서 도서관 고서에 묻혀 사는 게 일이었지. 남는 시간에는 소리 내지르며 음표 그리고.”

소리 전승은 ‘구전심수(口傳心授)’가 원칙이라 그것을 체계화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황 명창은 막연한 소리를 하나하나 오선보에 그려 올리고 한문을 일일이 한글로 풀어 선소리 사설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그 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황 명창은 92년에 이르러 ‘선소리산타령’의 ‘기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가 됐다. 또한 걸망매고 떠돌면서도 일념으로 매진한 후학양성의 길도 안정선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는 꿈에 그리던 ‘선소리산타령전수소(02-743-1772)’를 설립, 지금까지 전수생과 제자들을 위한 소리교육을 펼치고 있다.

그런 그의 50년 소리 인생을 담은 앨범이 최근 새로 출시됐다. 노래하는 산자락에 노장의 깊은 시선이 묻어나고 내지르는 타령에 객승의 한(恨)이 소리없이 흐른다. 무대에 서면 가득찬 객석이 곧 산천경개로 화하고 그 봉우리마다 절집이 우뚝우뚝 서는 것을 느낀다는 황 명창.

“그냥 부를 뿐이야. 산수가 끌어당기는 대로 내어 놓으면 그만이지. 두 다리 땅에 튼튼히 세우고 흥이 나는 대로 올리고 내리고 지르고 당기고…. ”

오는 4월 8~9일 서울국악제에서의 그의 ‘선소리 산타령’ 무대(국립국악원 예악당)를 기대해 본다.


선소리 산타령이란?
서서 부르는 산타령…범패와 유관

서서 부르는(立唱) 산(山)타령.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 개구리타령 등 5개 타령으로 구성된다. 다른 민속음악이 무속음악이나 토속민요에 근간을 두고 있다면, 선소리 산타령은 불교음악에 기반을 둔 새로운 장르의 민속음악이다. 조선 초 억불숭유 정책에 밀려 거리로 나앉게 된 스님들이 산천을 떠돌며 부른 애절한 삶의 노래가 선소리 산타령의 시작이다. 그래서 노래 가락에는 불교음악인 범패의 짓소리, 훗소리, 화청 등의 발성법이 상당 부분 녹아 있으며, 가사 역시 사찰을 묘사하거나 불교적 소재를 차용한 경우가 많다.
강신재 기자 | thatiswhy@buddhapia.com
2004-04-06 오전 9:57: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