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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이 숲에서 나온 까닭은?
2004년 봄, 천성산 벌목 현장에서 지율 스님은 자연 파괴의 현장을 온몸으로 막아 내고 있다. <현대불교신문 사진자료>
부처님은 숲에서 태어나 숲에서 깨달음을 얻고 제자들을 가르치다 숲에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서원한 제자들 역시 숲 속에 절을 짓고 정진해왔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제자 지율 스님은 왜 ‘숲을 나온’ 것일까?

“처음에는 모두가 땅을 파헤치고 가만히 두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가 산을 아픔에 울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산을 지키지 못하고 방관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다는 것을…. 그래서 참회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섰습니다.”

지난해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문제를 제기하며 38일과 45일에 걸친 두 차례 단식기도를 한 스님.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도롱뇽을 법정에 세운 스님. 내원사 산감 지율 스님이 지키지 못한 산은 바로 천성산이었다. 자연생태계보호지역이자 4㎞가 넘는 청정 계곡 12곳, 희귀 고층 습지 22곳, 법정보호동식물 30여 종 이상을 품고 있는 도립공원 천성산 말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1994년 고속철도공단이 제출한 ‘특별히 보호해야 할 야생 동식물은 없음’이라는 환경영향평가를 근거로 관통허가를 내주었다. 이것이 스님이 숲을 나서게 된 시작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시작은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10분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다른 생명의 소중함에 눈감아 버린 우리의 마음자리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숲을 나온 스님은 지난 한 해를 모두 천성산 살리기를 위해 쏟아 부었다. <지율, 숲에서 나오다>는 그 치열했던 일 년 간의 기록이다. 책의 1부는 두 번째 단식기도 중에 스님이 쓴 ‘단식일지’다.

“이 무상한 육신을 버려 천성(千聖)의 많은 생명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저잣거리에 나가 몸과 목숨을 내놓겠습니다.”(천성의 품을 떠나며)
“사람들이 내게 와서 묻는다./ 산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이곳에서도 하늘은 마음껏 볼 수 있고/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도 느낄 수 있다고.”(서른둘째 날 ‘사바의 꿈’)
“새벽 첫차를 타고 내려오신 어머님께서/ 가자. 그만 가자./ 다 그만두고/ 이제 그만 가자 하신다”(서른여드렛 날 ‘어머니’)
“산을 떠나 오기 전 상처 입은 인연으로 만난/ 소쩍새 새끼를 놓아 주면서/ 약속했습니다. /이 다음에 네가 자라서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도록/ 천성의 숲을 지켜 줄게 하고”(마흔다섯 째 날 ‘희망 버릴 수 없는 아픔’)

2부 ‘초록의 공명’에는 천성산 홈페이지(www.cheonsung.com)에 올린 스님의 글과 사진이 실려 있다. 환경 문제는 결국 인간의 삶의 태도에 대한 철학이라는 스님은 ‘작은 풀의 안부’를 묻고, ‘풀벌레 울음소리에 귀기울임’으로써 생명을 잃고 죽어 가고 있는 산과 강과 하늘을 마음의 뜰로 옮길 수 있고, 스스로 그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초등학생과 농부, 교수, 수녀, 시인 등 천성산 살리기에 힘을 보탠 사람들의 글이 담긴 3부 ‘우리, 아름다운 인연들’과 생태계 파수꾼으로 떠오른 꼬리치레도롱뇽의 생태를 보여주는 4부 ‘퍼지고 퍼지는 숨결’, 도롱뇽의 친구들이 쓴 그림엽서 100여 장을 담은 ‘엽서들’을 볼 수 있다.

지율, 숲에서 나오다
지율 스님 지음
도서출판 숲
8천5백원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4-03-31 오전 1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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