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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사진작가 알랭 베르디에씨
사진=박재완 기자
“한국사찰 뷰티풀! 단기출가 했으면…”

카메라 렌즈에 나타난 불교유적들은 어떤 모습일까.
35년간 81개국을 돌며 문화유적을 카메라에 담아온 프랑스 사진작가 겸 칼럼니스트 알랭 베르디에(56)씨의 대답은 간결했다. “뷰티풀(Beautiful)”이었다.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트레이드 마크인 이 감탄사를 남발하는 것이 외국인 특유의 단순한 감정 오버(over)가 아닐까 라는 의문을 품은 채 그 증거를 주문했다. 선뜻 내보인 수백장의 슬라이드 필름을 보고는 잠시 가진 선입견이 기우였다는 생각에 곧바로 그가 쏟아내는 말에대한 무장해제가 이루어졌다. 그 필름 속에는 ‘중국의 용문 석굴’을 비롯해 ‘티베트 라사의 포탈라궁’, ‘라다크 사원’, ‘미얀마의 만달레이 사원’, ‘인도네시아의 보로보도르 사원’, ‘네팔의 스와얌부나트 사원’ 등 수백개의 사원과 불교유적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스스로 자신의 방랑을 ‘만행’이라고 말하는 베르디에씨는 영국 써섹스 대학과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동양문화사를 전공하면서 처음 불교문화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이후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학에서 ‘동양종교학’을 전공하며 석사학위도 받았다. 이론적으로 동양 철학과 종교에 자신감이 생긴 그가 결정적으로 불교에 심취하며 불교문화유산 답사를 다닌 계기는 1986년 인도북부의 라다크를 방문하면서부터다.

“라다크를 가보고는 진정한 불교국가가 바로 이런 곳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수행자들은 물론 재가불자들까지도 수행을 철저히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에미스 사원에서 만난 스님들에게서 인연과 열반 등 불교에 관한 전반적인 가르침을 받은 것이 부처님께 귀의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됐지요.”

이후 그는 지금까지 35년간 아침 저녁으로 참선과 요가를 하고 있으며, 식생활도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는 채식을 선택했다. 또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의 사원에서 남방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사나’를 익혔다. 그리고 50번 정도 방문한 인도에서 요가도 배웠다.

“불자가 된 이후 마음의 변화가 가장 크게 느껴졌어요. 고요하고 평화롭고 항상 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때문일까. 수십만장에 달하는 그의 필름중에 불교문화유적이 거의 대다수다. 그의 작품 일부는 조계종출판부에서 제작하는 2005년 캘린더에 사용될 예정이다.

베르디에씨의 한국 방문은 90년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에는 일주일 정도 있었는데 경주 불국사와 속초 신흥사, 양산 통도사 등 3개 정도의 사찰만 답사했지요. 그래서 사실 한국불교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말까지 머물며 전국 사찰의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을 작정입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사찰에 들어가 참선과 단기출가 경험도 하고 싶어요.” 이런 것들은 단지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일일 뿐이다. 굳이 방한 목적을 밝히자면 유럽에 한국불교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다. 사실 유럽에는 달라이라마 때문에 티베트 불교의 영향력이 강한 편이다.

베르디에씨의 이력은 그가 다닌 나라만큼이나 다양하다. 사진작가와 여행가 뿐만 아니라 칼럼니스트로도 유명하다. 프랑스를 비롯해 필리핀, 인도, 포르투갈 등의 신문사에서 오랫동안 불교와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기고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지난 2월에 ‘도베’ 잡지에서 스리랑카 불교에 대한 내용을 썼다. 또 그는 교수로서도 활동했다. 72년과 77년 각각 필리핀 마닐라 대학 역사학과와 네팔대학에서 동양 종교를 각각 강의했다. 그래서 그의 제자 중에는 제법 유명인도 많다. 필리핀의 영부인이었던 이멜다 여사와 툴시기리 네팔 수상의 부인인 사라기리 여사도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다.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으로 갈 때 우연히 동승한 반정부 저널리스트 때문에 함께 아프가니스탄 감옥에서 4개월 동안 갇히기도 했다. 또 중국에서는 티베트 해방운동을 촉구하는 스티커를 붙이다 공안에 붙잡히기도 했다.

힘든 여정이 아직도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여행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웃으면서 자신감있는 어조로 대답한다.

“저의 여행은 단순히 사진만 찍는 관광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셨듯이 저도 인생의 작은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는 ‘만행’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 다음에 방문할 나라가 어디냐고 재차묻자 그는 “어디로 갈지 정확히 모릅니다. 인연과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것이 제 ‘만행’의 원칙이지요.” 어디서 배웠는지 처처(處處)가 곧 수행처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김주일 기자 | jikim@buddhapia.com
2004-03-29 오전 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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