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고구려 유민에 의해 세워져 700여 년 동안 격조 높은 문화를 꽃피웠으나 660년 신라에 의해 멸망한 ‘비운의 왕국’ 백제.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진 나라이지만 사료부족과 패망한 국가에 대한 승자의 역사왜곡 등으로 그 역사적 실체에 대해서는 갖가지 이설(異說)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역사가들은 아직 백제의 건국시조는 누구이고 왕성(王城)의 위치는 어디인지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고고미술사학자 엄기표(37ㆍ매장문화연구소 연구원) 씨는 ‘백제는 마구잡이 근대화의 최대 피해자’라고 말한다. 백제에 관련한 자료로는 <삼국사기>와 중국 역사서 <구당서> 등 손에 꼽을 정도라 발굴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백제 유적지는 근대화 과정에서 마구 개발됐다는 것이다. 1971년 발견 돼 불과 11시간 만에 유물이 수습된 무령왕릉의 발굴 과정이 그 단적인 예다.
“백제 역사는 많은 부분이 희미한 안개에 싸여 있고 아직도 옛 백제 영역이었던 땅 속에는 못다 한 역사 이야기들이 묻혀 있다”는 지은이는 20년 남짓 국내 유적지는 물론 일본 오사카와 교토, 나라, 대마도 등 백제의 숨결이 서린 곳을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이렇게 건져 올린 연구 성과와 관련 쟁점들을 정리하고 종합함으로써 진정한 백제의 실체를 밝혀내고자 한 것이다.
특히 지은이는 한국 불교미술이라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주로 불교미술사와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백제를 둘러싼 논쟁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예컨대 ‘백제의 건국 주체는 누구인가?’, ‘미륵사지 석탑이 먼저일까 정림사지 석탑이 먼저일까’ ‘백제는 중국 요서 지방에 식민지를 두었나’, ‘태안과 서산 마애삼존불의 부처 이름을 무엇일까’ 등 ‘백제를 제대로 알기 위해 꼭 밝혀야 할 의문점과 남겨진 과제를 정리하기 위한’ 15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은이는 책에서 자신이 던진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그동안 밝혀진 사실과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 국보 1호 불상은 신라가 만들었을까, 백제가 만들었을까’에서는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1883~1969)가 “지상의 시간과 속박을 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하고 원만하고 영원한 자태의 상징”이라 극찬한 일본 국보 1호 목조반가사유상과 우리나라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83호)을 비교함으로써 이 두 불상의 제작지를 살피고 있다. 또한 일본 법륭사 몽전(夢殿)의 구세관음상이 백제 성왕의 모습을 본떠 만든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을 비롯해 일본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에 보관 중인 칠지도(七支刀)는 백제가 일본에 내린 하사품인지, 아니면 헌상품인지를 짚어보는 등의 논란거리도 다루고 있다.
이 밖에도 책에서는 백제사의 최대 미궁(迷宮)이라 할 수 있는 초기 왕성의 위치와 익산 천도(遷都)설 등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록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진 못하지만, 지은이의 노력은 일반인들의 백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정말 거기에 백제가 있었을까
엄기표 지음
고래실
1만4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