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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새겨진 역사를 찾아서
나무는 선조들의 삶을 지켜온 ‘현장목격자’다. 5천 년 우리민족의 삶 가운데는 언제나 나무가 빠지지 않았다. 집 짓고, 음식 해먹고 살림살이를 만드는 인간생활 모두에 나무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조들과 삶을 같이했던 옛 나무의 사연들은, 바로 역사의 편린을 알아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의 저자인 박상진 교수(경북대 임상공학과)는 이러한 나무 조각을 통해 역사의 베일을 벗겨내는 나무문화재 연구가다. 그는 손톱크기 남짓한 나무문화재 조각을 붙잡고 현미경과 씨름하며 30년을 보냈다. 이 책에는 그 세월동안 바로 그가 밝혀낸 나무 안팎의 사연들에 관한 연구 결실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 첫 결실은 1981년 일명 ‘신안보물선’이라 불리는 배의 재질을 분석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배의 조각 일부를 뜯어 연구한 결과 일본에서만 자라는 삼나무가 배의 재료 중에 일부 섞여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목재조직학’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계기가 됐다.

이후 그의 명성을 고고학계에 확실히 인식시킨 사건이 있었다. 백제 최대의 고분으로 알려진 무령왕릉 발굴이 있은 지 20년이 지난 1991년, 저자는 우연히 이 무덤에서 출토된 나무관의 아주 작은 조각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모두 이 관의 재질이 밤나무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나무 조각을 현미경 접안렌즈로 들여다본 그는 잠시 후 소스라치게 놀랐다. 작은 조각은 밤나무가 아니라 일본의 남부지방에서만 자라는 금송(金松)이었던 것이다. 그의 발표로 학계는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이 관이 일본에만 있는 목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기록을 증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책에서 그는 평소 많은 사람들이 그저 무심히 지나쳤을 오래된 나무조각 하나에 얼마나 유장한 역사의 흐름과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담담한 어조로 깨우쳐 준다.

그가 30여년동안 나무문화재와 씨름하면서 무엇보다 관심을 기울인 것은 단일 나무문화재로는 최대라고 할 수 있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는 팔만대장경의 전설과 진실, 그 간극을 파고든다. 그리고 마침내 팔만대장경은 자작나무로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에서 흔히 보는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로 만든 것이며, 제작장소 또한 강화도가 아니라 해인사 근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책에서 이런 나무 분석 이야기들과 함께 나무에 얽힌 다양한 상식들을 구수한 옛이야기 들려주듯 쏟아낸다. 나이테란 나무가 자랄 당시의 환경을 켠켠이 기록한 ‘자연의 하드디스크’이며, 거북선이 박치기 명수로 일본 함선들을 박살낼 수 있었던 것은 단단한 참나무로 만드는 조선 군선의 특징 덕분이었다는 이야기 등도 이어진다. 또 신라 천년의 신비인 천마도의 캔버스가 된 백화 수피(흰 나무껍질)는 방부와 방수 성분을 가지고 있어 수천 년 땅속에 묻혔어도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신라를 망하게 한 것이 나무, 즉 숯이었다는 그의 주장 또한 흥미롭다. 신라 후대의 주 연료였던 숯의 대량 소비로 인해 경주 부근의 참나무숲이 파괴돼 자원이 고갈됐고, 가뭄과 기아가 뒤따라 국가의 기강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 책은 멀리 석장리 구석기시대의 나무 유물에서부터 안압지의 나무배, 목포 달리도배 등 고선박, 무량수전·봉정사 극락전 등의 건축재, 글자가 새겨진 목판 등 나무문화재에 얽힌 사연과 세월의 흔적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책속의 밑줄 긋기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 때 사람들은 흔히 죽는 것이 낫다고 한다. 나무나라 백성들도 마찬가지다. 숲 속에서 한세상 살다가 나이를 먹어 썩어 넘어지거나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베어진다. 어린 싹이 새로 자라지만 자기 죽음의 자리를 다시 메우는 냉엄한 자연법칙을 나무라고 모를 리 없으니 흔쾌히 받아들인다.”

▲“숲속의 나무들은 좁은 공간을 나눠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눔의 방법이 정해진 것이 아니니 자연 다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조금의 빈자리라도 생겼다 하면 주위의 나무들은 우선 가지부터 들이밀고 본다. 처음에는 자기만 먼저 살겠다고 발버둥 치지만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다보면 함께 협조해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부족함을 조금씩 메워 나갈 수 있도록 아예 몸을 합쳐 한 나무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
박상진 지음
김영사
1만3900원
김주일 기자 | jikim@buddhapia.com
2004-03-23 오후 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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