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계천 복원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필자가 처음으로 청계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사업에 실패한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향했던 32년 전의 일이다. 어머니는 새벽에 청계천으로 일을 나가셨고 필자는 어머니로부터 ‘전태일’ 소식 등 청계천 주변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야기들을 들으며 세상의 궁금증을 풀기도 했다. 우리 3남매는 청계천주변에서 거두어들인 어머니의 잉여생산물로 성장했으니 가히 청계천은 필자가 성장한 거름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서울시의 부탁으로 청계천 시민투어 안내를 20여회 진행했다. 두 시간정도 어둡고 암모니아냄새 가득한 지하에서 광통교와 수표교 터를 확인한 시민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생태적, 구조적으로 청계천복원에 찬성을 보내지만 심도 깊은 장기계획 없는 서울시의 밀어붙이기에는 걱정이 많았다.
일제 초(1910년대)까지 개천(開川)으로 불렸던 청계천에는 조선 최초의 석교인 광통교 등 20여개의 다리가 세워졌다. 도성 86개의 다리 중 20여개가 개천에 있었으니 개천의 중요도를 알 수 있다. 조선 때는 도성문화의 중심지로 답교놀이, 편싸움, 연등행사, 연날리기 등이 행해졌고, 서민과 거지들의 생활터전이었던 청계천을 단지 더럽다는 이유로 박 정권은 44년 전 환경에 대한 고민 없이 청계천을 복개했다. 우리나라 행정이 5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고, 복원을 위한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오랜 세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을 시장 임기가 만료되는 2년 6개월 만에 복원하겠다는 생각을 밝혀 새만금이나 시화호 같은 사례를 다시 낳을까 우려된다.
현재 청계천에서는 역사를 증명하는 조선시대 석재와 유구가 발굴되고 있다. 청계천 퇴적물은 600여년 인간의 희로애락을 간직한 문화인류학적 보고이기에 당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묻혀진 역사를 찾아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이처럼 중요한 역사 복원을 2년 6개월 만에 끝내겠다는 서울시의 의도에 대해 이를 차기 대선에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일고 있다. 서울시 곳곳에 걸려있는 ‘역사와 문화복원-청계천복원사업’ 현수막과는 달리 역사문화복원이라는 허위의 논리로 가득 찬 정치경제적 세력들의 자기 살기식 청계천 복원은 중단되어야 한다. 청계천 복원이 개인의 이익, 선거에 이용되는 것은 곤란하다. 서울시는 철거와 가계의 의견 수렴, 역사 문화 복원 원칙 수립을 충실히 하고, 차기 시장에게 복원을 맡겨야 한다.
사실 필자는 청계천 복원과 함께 일제 강점기부터 훼손되기 시작한 서울 도성도 복원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도성을 따라가면 문화예술의 거리 낙산(대학로)과 옛 난전이 세계적 시장으로 변모한 이현(동대문 시장), 생활문화·체육공간인 장충 체육관·장충단 공원·국립극장이 있다. 그 옆으로 돌아가면 남산과 칠패(남대문 시장), 근·현대 역사 현장인 정동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현재 존재하는 도성의 흔적을 느낌으로나마 복원하고, 지역의 장점을 특화하면 거대도시 서울은 600년 고도의 명분을 되찾을 수 있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청계천 복원, 긴 호흡으로 진행하자. 청계천 복원은 생태학적, 환경적, 구조·안전적으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서울의 역사와 문화유산 복원·활용을 염두에 두면서 600년 도시 형성의 맥락과 연계된 긴 호흡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