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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계림동에 자리한 방부불교병원 홍기표 원장(洪箕杓·44). 바쁠 것이라 예상하고 일과가 끝난 저녁에 병원을 찾았건만 원장실에 잠깐 붙들어 놓기가 쉽지 않다.
여기저기 병원 내를 서성이는데 복도 벽면에 붙여진 글귀가 눈에 띈다.
약사여래 동방정토(藥師如來 東方淨土) / 광주동방 계림방부(光州東方 鷄林邦父) / 약사여래 서원성취(藥師如來 誓願成就) / 계림방부 불교병원(鷄林邦父 佛敎病院)
‘광주의 동쪽 계림에 자리한 방부불교병원은 동방의 약사여래 서원성취 도량이다’는 홍원장의 불교병원 건립의지가 담긴 글귀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해 열두 가지 원을 세운 부처이다. 내 몸과 남의 몸에 광명이 가득하게 하고, 불구자로 하여금 모든 기관을 완전하게 하고, 중생의 기갈을 면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고…가난한 이에게 의복을 갖추게 하여 무상보리를 증득케 하는 원이다. 이러한 약사여래의 원을 좇아 홍 원장은 지난해 11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광주에 불교병원을 개원했다.
“의대 재학 중 나주 다보사 일륜 스님 병문안을 갔지라. 스님이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데 가슴이 찡 합디다.”
스님 수술에 앞서 목사가 머리맡에서 ‘하나님’ 찾으며 기도하더라는 것이다. 기독교병원이었던 것이다. 목사의 마음은 고맙지만 불교병원 하나 없는 부끄러움과 서러움으로 마음이 상해있던 차에 의대생을 만나자 불교병원 건립을 당부했던 것이다. 이때 세운 불교병원 건립 원력이 20여 년 만에 이루어지기까지 홍 원장은 또 다른 인연이 몇 있다.
홍 원장은 나주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흔히 말하는 '시골 돌팔이'를 만났다. 살이 썩어 들어가 결국 한쪽 다리를 제대로 못쓰게 됐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의사가 되려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 광주 원각사에서 송광사 현묵 스님의 단전호흡 강좌가 있었다. 동양학과 건강에 깊은 관심이 있던 그에게 단전호흡은 불교와의 인연이 되었다. 그 후 고등부, 대학부 불교학생회를 거치면서 신심 깊은 불자로 거듭나게 됐다. 학생시절 한 권 짜리 ‘한글 대장경’을 머리맡에 놓고 살았다.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한글대장경을 펼쳤다. 그때마다 부처님의 지혜를 빌려 무난하게 이겨냈다.
사회에 나와서도 그러했다. 전문의를 마치고 개업하기 위해 ‘대촌리’ 시골로 들어갔다. 약사여래 원력을 안고 살아온 홍 원장에게 의술은 단순한 밥벌이가 아니었다. 경전을 읽고 또 읽고서 결단을 내렸다. 그를 필요로 하는 이에게 찾아가자는 것이었다. 당시 전문의는 대부분 시, 군 단위에 개업하는 것이 통례였다. 부지런하고 낙천적인 천성과 약사여래의 원력을 담은 손길은 환자들에게 쉽게 다가갔고 지역에서 으뜸가는 병원이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홍 원장에게는 ‘달마’라는 별호가 붙었다. 서글서글한 외모나 성품이 친근하게 다가와 하얀 가운만 승복으로 바꾸면 영락없는 달마다.
“아마 10만 명은 족히 진료했을 것이요. 환자는 일거수 일투족을 잘 봐야 허요. 그러면 문제가 보이고 문제를 제대로 보면 풀기는 어렵지 않지라.”
홍 원장은 ‘명의’로 소문이 났다. 그의 전공인 가정의학과 특성상 신체를 골고루 공부했고, 단전호흡은 몸의 전체적인 흐름과 유기적인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환자를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면 분명히 병이 보인다. 이렇게 해서 내린 그의 진단은 틀림이 없었다. 많게는 하루 300명이 넘는 환자를 봤다. 그러면서도 항상 웃는 얼굴로 부모님 모시듯 했다.
홍 원장은 “의학이란 막히면 뚫고 뚫려 있으면 막아서 생명이 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 한다. 병은 무엇보다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 그동안 서양의학은 분야별로 매뉴얼화 되어있어 책이 대형도서관으로 하나가 되고도 남는다. 따라서 진단만 정확하면 고쳐지지 않는 병이 없다는 것이다.
도심지 한복판에 자리한 방부불교병원은 10층 건물에 가정의학과를 중심으로 내과, 정형외과, 일반외과, 신경외과, 비뇨기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진단의학과 등 첨단학과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진료를 담당하는 준 종합병원이다.
건물을 다시 개조해 개원한 방부불교병원은 깨끗하고 아늑하기가 호텔을 방불케 한다. 50여명의 진료진이 가장 최선을 다하는 것은 서비스이다. 그렇지만 홍 원장은 “치료 잘하는 병원이 우선이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다음이 전국에서 가장 값싼 진료비를 받는 곳이고 그러면서 친절한 병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부불교병원이 개원하자 인근 교회에서 ‘불교병원 간판내리기 작정기도’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불교병원에 대한 불교인들의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다.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병원내부에서조차 은근히 간판에서 ‘불교’를 지웠으면 하는 무언의 압력도 있다.
“너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들 일은 신경쓰지 안해 버려요. 불교병원에서는 분별없이 누구라도 항상 열어놓고 따뜻하게 받아들일 뿐이지라.”
며칠 전 입원환자가 100명이 넘어섰다. 홍 원장 명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제 운영에 숨통이 트인 것이다.
약사여래 열두 서원 가운데 일곱째가 몸과 마음이 안락하여 무상보리를 증득하게 하려는 원이다. 의사, 환자를 둘로 보지 않고 병을 치료한다기 보다 환자를 도와 함께 부처되기를 기원하는 것이 바로 홍 원장의 원이다. “불교병원 건립을 위한 노하우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돕겠다”는 홍 원장은 “일산 불교병원의 개원을 계기로 지역마다 불교병원들이 생겨서 전국의 네트워크화가 이뤄지면 좋겠다”는 발원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