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博物館)에는 없는 것이 없다. 인간의 삶과 그 주변에 관한 모든 흔적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박물관은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기억의 터’다. 그러나 없는 것이 없는, 문화가 넘치는 그곳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속에 진짜 ‘문화’는 없다. 대신에 ‘낡은 것’ ‘고리타분함’ ‘지루함’ ‘엄숙함’ ‘딱딱함’ ‘조상의 얼’ ‘전통’ 같은 키워드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박물관이란 재미는 없지만 유익한 곳, 즐기지는 못하지만 문화의 세례를 받을 수 있어 한번쯤은 가봐야만 하는 곳으로 각인돼 있다. 좀더 설명을 붙이자면 박물관은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군림하고 있는 고급문화 공간인 셈이다.
이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영국에서 박물관학을 공부한 저자는 박물관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을 요청하며 ‘박물관에 말걸기’를 제시한다. 즉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새로운 발상이다.
그렇다면 박물관과 대화를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저자는 박물관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다만 관람자의 경험과 주변의 삶을 둘러보고 꾸준한 관심을 가지면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문제나 사람에 대해 생각하다가 자연히 그와 관련된 특정한 유물이나 그것을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에 관심을 가지면 된다고 보고 있다. 반대로 어떤 유물을 대하면서 관람자 자신의 삶과 생각을 끄집어 내 보이는 것도 해당된다. 바로 이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박물관에 말을 걸고 의사를 소통하는 방법이다.
<박물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저자가 이런 방식으로 세계 12개국 44개 박물관을 둘러보며 박물관과 나눈 일종의 대화록이다. 저자와 대화를 나눈 화자(話者)는 ‘박물관(Museum)’의 기원이 시작된 그리스의 ‘무제이온(Mouseion)’ 언덕에서부터 근대 최초의 박물관인 ‘대영박물관’, 인간의 진솔한 모습을 재현해 ‘이웃’으로 자리잡은 프랑스 ‘에코뮤지엄’, 20세기 역사의 가장 어두운 기억의 현장인 ‘아우슈비츠 박물관’, 이집트의 ‘이부심벨’, 미국의 ‘구겐하임’ 등 다양하다.
특히 책 중간마다 ‘박물관 노트’ 라는 두 페이지 분량의 짤막한 별도 섹션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 유산’, ‘박물관에 가는 백 가지 방법’ 등 박물관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외에도 이 책은 그리스와 영국 사이에 기나긴 외교 분쟁을 촉발시킨 앨긴 마블스, 뉴욕 런던에 흩어진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등을 통해본 제국주의 시대 유물의 약탈사, 무명화가 반 미허른의 복제일화도 소개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저자가 주장하는 알찬 박물관 여행법이다. ‘많이 돌아다니지 말자’ ‘중요 전시는 절대 타인과 가지 않는다’ ‘관람 후의 시간을 여유 있게 둔다’ 등을 저자 나름의 노하우로 꼽는다. 기존의 박물관 가이드북처럼 이미 평가를 내리고 그 방향에서 설득하는 방법과는 다르게 적혀 있어 신선하게 다가온다.
박물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성혜영 지음
휴머니스트
1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