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성인용품 제조업체가 연꽃문양과 유사한 이미지로 형상화한 상표를, 어떤 주류업체는 불(佛)자를 술병 모양으로 형상화해 상표로 사용하고 있다. 불교계는 불교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며 반발하지만 상표권을 가지고 있는 업체들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이 얘기는 가상 시나리오다. 하지만 그리 먼 시점의 일이 아니다. 최근 드러난 해인사 사례는 이미 불교 문양에 대한 지적재산권 시비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인사는 지난해 3월 화엄경의 대의를 그림으로 표현한 의상 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 대해 상표등록을 출원했으나 최근 특허청 상표심사국으로부터 이와 비슷한 상표가 이미 등록돼 있어 특허를 내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미 등록된 상표는 ‘옥황도(玉皇徒)’라는 상표명으로‘철학역학사 양성업’등의 서비스업에 등록돼 있으며, 자세히 뜯어보지 않고는 화엄일승법계도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형태다.
화엄일승법계도를 ‘해인도’라고 부르며 사찰의 상징처럼 이 문양을 사용해 온 해인사는 자칫 해인도가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 이미 출원된 상표에 대한 등록 무효심판을 준비 중에 있다.
이와는 다소 다른 내용이지만 ‘불(佛)’‘만(卍)’과 같은 문양도 이미 여러 가지 형태로 상표등록이 돼 있다. 특허청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결과 ‘불(佛)’자의 경우는 10여 가지 형태의 상표가 귀금속류나 비금속제품(접시, 술잔), 의류, 신발, 모자 등 150여 품목(상품)으로 지정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만(卍)’이나 ‘옴마니반메훔’도 5가지 형태의 상표가 사찰운영업, 사찰관리업, 수의 등의 품목으로 지정돼 있다.
문제는 불교 문양이 다양한 형태의 상표로 등록될 경우 불교 관련 캐릭터나 상표가 선점 당하면서 지나친 상업화나 불교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상황까지도 초래된다는 점이다.
해인사의 화엄일승법계도 상표등록 출원을 맡았던 김국진 변호사는 “분쟁소지는 물론 불교계가 불교 문양을 개발하거나 캐릭터화해 불교 문화산업진흥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할 경우 상품성이 큰 상표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예상된다”며 “충분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모든 권리를 빼앗기게 된다”고 우려했다.
온라인(인터넷) 상에서의 저작권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찬불가나 한글대장경의 지적재산권 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다음 카페에만도 2061개에 달하는 등 수 천개에 이르는 불교관련 사이트 가운데 저작권이 있는 찬불가를 무단으로 디지털화(파일로 변환)해 올려놓은 경우나, 한글대장경을 무단으로 올려놓은 경우는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캐릭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된 사례는 지난 1997년 봉축위원회가 봉축디자인을 무단으로 사용한 업체를 저작권법 위반협의로 기소한 것이 고작이지만, 관계 전문가들은 불교 캐릭터 대부분이 의장등록이나 상표등록이 돼 있지 않아 선점당할 우려와 함께 분쟁 소지도 많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종단 명칭 또한 관음종 등 일부 종단을 제외하고는 조계종을 비롯한 대부분의 종단이 상표등록을 해놓지 않아 일반인은 물론 불교인들마저 혼동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조계종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불교 상징이나 문양에 대한 특허출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나 특별히 대응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히고 있어 인식전환이 시급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