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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조계사 극락전. 조계사청년회(회장 정우식)가 주최한 수행법 대강좌에서 ‘보현행원 수행법’에 대해 강의한 이종린(50) 홍익소아과 원장은 우리 불교가 ‘깨달음(見性)의 불교에서 공양(供養)의 불교’로 대중화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불혹의 나이에 <화엄경>의 ‘널리 바치고 섬겨라’는 ‘광수공양(廣修供養)’이란 언구에 이르러 엄청난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는 이 원장. 보현행자로 거듭난 그는 “보현행원이 대다수의 수행법과는 달리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으며, 나와 남이 동시에 밝아지고 지혜와 자비가 동시에 성숙되는 화엄 수행의 정수”라고 강조한다. 모든 이들이 부처님이므로 남을 공경하고 칭찬하고 자신의 번뇌와 욕심을 모두 부처님께 공양하다 보면 나와 남이 보현보살이 되고 부처님이 된다는 것.
지난 10여년간 보현행원을 펼쳐온 이 원장은 서울대 의과대에 다니던 1974년 불교에 처음 관심을 가진 이후 운허, 탄허, 월산, 고암, 구산, 청화, 혜암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을 찾아다녔던 다분히 청년 구도자였다. 한 때는 너무나도 다양한 수행법에 혼란과 좌절을 느껴 불교를 멀리 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난 94년 이후 <님은 나를 사랑하시어><세간 속에서 해탈 이루리> <실천 보현행원>(불광출판부) 등의 저서를 펴내며 보현행원 수행법의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선지식을 만나기 힘든 바쁜 생활인에게 맞는 수행법으로 보현행원만큼 원융무애하고 뛰어난 수행법이 없다”는 이 원장. 보현행원의 가르침이 수승한 법공양이 될 것이라는 그의 강의내용을 요약했다.
■일상생활 자체가 수행
가령 화두를 들어도, 깨달아 부처 되려고 드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기쁘게 하고 나의 깨달음을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마음으로 들면 화두 드는 것이 그대로 보현행원이다. 가정 주부가 아침밥을 지을 때도 “우리 ‘남편 부처님’ ‘아이 부처님’들이 이 공양을 받고 건강하고 부처님 시봉 공양 잘하기 발원”하면 밥 짓는 것이 그대로 보현행원이다. 지금까지 무의미하게 살던 일상생활, 삶의 현장 그대로가 생계의 수단이나 욕망의 달성 현장이 아니라 수행이 된다.내 삶을 충실히 살면 살 수록 우리는 수행을 잘하는 셈이다.
■보현행원의 열가지 수행
열 가지 보현행원은 부처님을 공경하고, 부처님의 공덕을 칭찬하며, 만나는 이마다 지성껏 공양 드리고, 잘못된 일은 즉각 뉘우치며 용서를 구하고, 남이 조금이라도 잘한 것이 있으면 같이 기뻐하고, 만나는 이마다 부처님 법문 듣기를 청하며, 이 세상 모든 부처님들이 더 오래 우리 주변에 머무시어 더 많은 중생을 제도하시기를 바라고, 부처님을 본받아 공부 열심히 하기를 맹세하며, 곳곳의 중생들을 부처님 대하듯 섬기고, 행여나 생긴 이익이 있으면 모든 이들에게 나눠 드리는 것이다. 이 열 가지 행위는 다른 수행법과 달리 언제 어느 때나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즉각적인 수행효과
행원을 시작하며 온갖 장애가 극복되고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된다. 행원은 하는 것만큼 즉각적인 공덕을 가져 온다. 즉, 한 번 하면 한 번 하는 것만큼, 열 번 하면 열 번 하는 것만큼의 공덕이 즉각 생겨난다. 우선 부정적이던 나의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어가며, 내 자신이 기쁨과 환희 속에 잠긴다. 또한 내 주위의 분들이 나로 인해 기쁨을 얻고 나로 인해 부처님 품에 들게 되는 내가 바뀌고 다른 이도 바뀌며 더불어 이 사회가 바뀐다.
■경전이 스승이 되는 쉬운 수행
다른 대부분의 수행법은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나 이 행원만큼은 그렇지 않다. 스승 없이도 열 가지 행원은 얼마든지 행할 수 있으며 나의 수행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나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다. 즉 내 주위에 나로 인해 이익을 받는 이가 많아지고 나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질 수록 내 행원은 바로 가고 있는 것이며 나로 인해 괴로워하고 나를 싫어하고 비난하는 분들이 많아질 수록 내가 행원을 잘못하고 있는 징표가 된다.
■우리 모두 성불로 이끄는 수행
행원은 우리 모두를 성불로 이끄는 수행법이다. 일반적인 수행법은 우선 본인의 발전에는 기여하지만 타인에게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하지만 행원은 그 하나 하나가 행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주위의 행원을 하지 않는 사람 조차도 같은 수행의 효과를 가져 오게 한다. 이와 같이 행원은 비록 나 혼자 할지라도 그 행원은 우리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성숙을 가져와 사회가 밝아지고 온 국토가 밝아지게 한다.
■모든 수행법의 귀결
보현행원은 모든 수행법을 하나로 통합시킨다. 바로 법공양의 의미를 지닌 ‘여설수행공양(如說修行供養)’이 그것이다. 본래 불교는 대립을 지양하고 하나되는 가르침이지만 수행법의 차이로 분열상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참선을 제일로 치는 분, 염불이 제일이라는 분, 또 같은 참선이라도 간화니 묵조니 하며 얼마나 많은 분란이 있었던가. 하지만 이 여설수행공양은 이런 분란을 모두 종식시켜 이런 훌륭한 수행법들을 하나로 묶어 오로지 부처님으로 돌아가게 한다. 부처님이 원하시는 수행, 내 자성 부처가 권하는 대로 수행을 하면 되는 것이다. 불리보리심공양(不離菩提心供養)에 이르면 더 할 말이 없게 되니, 화두를 들고 묵조를 관하고 염불을 하는 것이 바로 보리심 떠나지 않기 위함이 아니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