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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5시 직지사 산내암자 중암에 안치됐던 관응 스님의 법구가 국화꽃으로 장엄된 영구차량에 실려 영결식장에 모셔졌고, 만덕전 앞 영결식장에는 영결식단과 의자 2천5백개가 준비되었다. 또 공양간 앞에는 참배객을 위한 도시락 1만개가 준비됐다.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약 1만 여명의 참배객이 올 것으로 예상한 직지사는 아침부터 곳곳에 안내 인원을 배치하고 차량관리 및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오전 10시30분 총무원장 법장 스님 원로회의 부의장 종산 스님 원명 스님이 도착하고 문화관광부 종무실장이 속속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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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오전11시. 다섯 번의 명종을 시작으로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이며 제8교구본사 직지사 조실인 관응 스님의 영결식이 직지사 만덕전 앞에서 원로희의장으로 봉행됐다.
영결식에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도원 스님, 원로회의 부의장 종산 스님과 원명 스님을 비롯 지종, 성수, 동춘, 지혜, 초우, 정천, 활안, 진제, 혜정 스님 등 원로스님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전 비구니회장 광우 스님, 불교신문 향적 스님, 동화사 지성 스님을 비롯한 각 교구본사 주지 스님, 중앙종회 의장 지하 스님 등 1만여 사부대중이 참석해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내빈으로는 청와대 불자회장 조윤제, 문화관광부 종무실장 한진수, 지역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민배, 대구지검 김천지원장 이찬우, 대구지검 김천지청장 조균석, 김천경찰서장 김성관, 전 법무부장관 정해창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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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 법전 스님은 추도법어에서 “무소 끊는 기틀을 어떻게 측량하리요. 천 개의 눈을 단박 뜨더라도 엿볼 수 없도다”라고 법문했다.
원로회의 의장 도원 스님은 “나고 죽음이 해탈의 진원이요, 오고 감이 생사자재의 대용일지라도 이처럼 환귀본처(還歸本處)하여 무형무상의 말없는 본분만을 보이시니 저희들은 슬퍼하지 않을수 없다.”라며 영결사를 통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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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응당 지안 스님 다비식
3일 오후 1시 영결식이 끝날쯤부터 내린 눈이 온 산하 대지를 뒤덮은 가운데 한가로운 구름처럼, 따뜻한 봄바람처럼, 뿌리깊은 거목처럼 황악산중을 지키시던 관응당 지안 스님의 다비식이 직지사 만덕전에서 0.7Km지점에 준비된 연화대에서 엄숙하게 치러졌다.
만장을 앞세운 운구행렬은 영결식이 끝난 12시 20분경 곧장 다비장으로 향했다. 영정, 위패, 상여의 뒤를 1만여명의 스님과 조문객들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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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화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스님, 집에 불 들어갑니다.”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퍼지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조문객들은 아미타불을 염하며 일부 조문객들은 스님을 애도하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속히 사바세계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다시 오셔서 못다 하신 일들을 이루시고 중생들을 건져 주시옵소서.’
관응당 지안 스님의 열반을 추모하는 염불이 황악산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렇게 별은 하늘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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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응 스님 문도회는 오는 3월 5일 직지사 중암에서 초재를 지내는 것을 시작으로, 안양 보장사와 청도 운문사, 통도사, 백련암 등에서 4월 16일까지 49재를 봉행할 예정이다.
한가로운 구름처럼, 따뜻한 봄바람처럼, 뿌리깊은 거목처럼 황악산중을 지키시던 관응당 지안 스님은 2004년 2월 28일 오후 7시 달이 대해에 잠기듯 별이 하늘로 돌아가듯 원적에 들었다. (세수 95세 법랍 7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