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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죽음을 위해 건강한 삶을 계획하자
에로스(erosㆍ성性)와 타나토스(thanathosㆍ죽음)는 인류의 오랜 터부였다. 성은 근래 수십 년 사이 담론화 과정을 거쳐 금기의 틀을 벗어났으나, 죽음은 아직도 두려운 존재다. 죽음을 말하는 것은 절망을 말하는 것이었고, 죽음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또 경찰청이 집계한 2002년 자살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28.94명으로 세계 1위에 해당해, 우리 사회의 죽음은 결코 건강하지 못하다.

그러나 최근 건강한 죽음을 통해 건강한 삶을 계획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 이들은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죽음에 대비해 유서를 쓰고, 가치 있는 죽음을 위해 장기를 기증하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생사학(生死學ㆍThanatology) 연구와 죽음준비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월 28일 서울 YWCA 회관에서 열린 세계의 죽음교육에 관한 국제 세미나 ‘죽음준비교육, 왜 실시해야 하는가?’도 이 같은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토론장이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오진탁(한림대 철학과) 교수와 고영섭(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도 생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속에 포함돼 있다.

불교와 장자철학을 전공한 오진탁 교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림대학교에서 삶과 죽음에 관한 강의를 해왔다. 최근에는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이날 ‘죽음, 성장의 마지막 단계’를 발표한 오 교수는 “죽음 앞의 인간은 4가지 평등과 7가지 차별을 겪는다”고 운을 뗐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어디서건 죽고 어떻게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4가지가 평등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부인·분노·타협·우울·수용·두려움·희망이라는 7가지 서로 다른 모습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 교수는 죽어가는 사람이 어떤 생사관이나 종교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 크게 차이난다고 말한다. 오 교수는 “티베트에서는 죽음이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죽음에 임박했다는 의사의 말에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라고 말하며 깊은 명상상태에서 죽음에 이른 한 티베트 수행자의 예를 들었다.

이러한 수행자는 아름다운 삶 뒤에는 아름다운 죽음이 있고,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삶의 가장 영광스러운 성취의 순간임을 이미 깨달은 것이다.

결국 죽음은 삶의 문제다. 오 교수는 “생사학이나 죽음 준비교육은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준비를 통해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변모시키도록 도모하는 것”이라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삶을 준비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불교와 생사학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한림대에서 역시 죽음과 관련한 강의를 6년간 진행해온 고영섭 교수는 “죽음에 대해 역사, 철학적으로 불교만큼 관련이 깊은 종교나 학문은 없다”고 말한다. <티베트 사자의 서>, 윤회관 등을 통해 불교가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고찰을 해왔기 때문이다. 또 고 교수는 생사학을 불교가 현대적 학문과 접목했을 때 가장 연구 성과가 클 분야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다.

고 교수는 “생사학은 ‘죽음·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고민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안락사·낙태·자살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죽음과 마주치는 순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있다”며 그 의미를 밝혔다.

△ 죽음 준비교육과 밝은 죽음을 준비하는 포럼 발족
이날 세미나 마지막 순서로 ‘밝은 죽음을 준비하는 포럼’의 발족식이 열렸다. 이 포럼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는 건강하고 밝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겠다는 목적으로 설립, 이날 정진홍(한림대 한림과학원) 교수를 대표로 선출했다.

‘죽음 준비교육, 왜 실시해야 하는가?’라는 세미나도 밝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각 국의 죽음준비교육 현황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칼 베커(Carl Beckerㆍ일본 교토대학 종합인간학부), 고영철(러시아 국립사회대 한국학과) 교수가 각각 소개한 미국과 러시아는 이미 중·고·대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평생교육으로서 죽음준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이후 미네소타, 애리조나 대학 등 많은 대학들이 생사학에 관련된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는 2001년 모스크바에서 개원한 죽음요법학 연구원에서 죽음요법사를 길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은 삶과 죽음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아직 생소한 만큼 죽음교육도 몇몇 대학에서만 이뤄질 뿐이다. 이날 한국의 죽음교육 현황을 발표한 김현수(전주교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초등학교 제7차 교육과정에서 생물이 죽는다는 내용과 표현이 기록된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했다.

한편 포럼의 대표로 선출된 정진홍(한림대 한림과학원) 교수 등 포럼을 준비한 이들은 불교, 개신교, 가톨릭, 원불교 등이 모두 참여하는 범종교적 단체가 되길 희망하다고 밝혔다. 밝은 죽음 준비는 삶의 의미를 찾고 죽음 이후에 대해 답해주는 종교와 합치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오유진 기자 | e_exist@buddhapia.com
2004-03-03 오전 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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