啄했으니 오늘날 江湖에서 이름높은 學匠치고 큰스님의 門庭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또한 누구보다도 熾熱한 參禪修行者였습니다. 천축사 無門關에서 6년간 西翁 智曉스님과 佛祖의 骨髓를 얻기 위해 結社精進하신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입니다. 그 뒤 환갑도 훨씬 넘은 나이에 청암사 수도암에 들어가 平生道伴인 古松 瑞雲 昔珠스님과 ‘老年安居’를 하셨으니 그 모습을 생각하면 千辯萬舌이 도리어 부끄럽다 할 것입니다. 어느 해에는 後來의 正眼을 위해 七旬老軀를 무릅쓰고 무려 한달간 禪門念頌을 講說한 일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恩惠였습니다.
禪敎兼全의 大宗匠이며 修行과 布敎의 龜鑑이신 觀應堂 智眼큰스님
실로 스님은 眞摯한 修行者의 表象이요, 敎學의 首領이자 布敎의 先驅者였습니다. 한국불교 歷代俊傑 가운데 이렇듯 스님처럼 禪敎를 兼全하고 修行과 傳法을 한 몸으로 감당한 분은 참으로 드물었습니다. 그리므로 宗徒들로서는 큰스님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盲龜遇木의 法緣이라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宗徒들은 오늘 큰스님을 永訣하면서 千秋의 後悔가 되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왜 진작 큰스님을 번듯한 會上으로 모셔서 더 많은 甘露法門을 청하지 못했던가 하는 아쉬움입니다. 이것은 현대 한국불교가 外的膨脹에만 몰두하고 分裂爭鬪만 일삼다가 정작 正法繼承과 宣揚을 게을리 한데 대한 가슴앓이기도 합니다.
큰스님. 그래서 오늘 저희들은 無禮를 무릅쓰고 請하올 말씀이 있습니다. 經에 이르기를 大悲闡提는 衆生을 구제하기 위해 願生으로 태어난다 했습니다. 하오니 큰스님께서도 被毛角載入廛來하여 優鉢羅華火裏開하는 도리를 보여 주시옵소서. 이는 오직 큰스님 生前에 못다 배운 眞法을 다시 배워 無知蒙昧를 없애려는 기특한 마음에서입니다.
큰스님. 오늘 여기 모인 四部大衆의 希願을 들으시거든 꽃이 피면 꽃으로 오시고, 바람이 불면 바람으로 오셔서 다시 한번 가르침을 베풀어주소서. 還歸裟婆하시어 無明衆生의 귀와 눈을 열어주소서. 삼가 宗徒들은 香을 피워 合掌하고 敢請하나이다.
불기 2548(2004)년 3월 3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