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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기고문 전문
김용옥씨가 그가 저술한 정도전 관련 출판물에 대한 mbc 공개특강에서 불교의 윤회론을 비판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논지인즉, 영혼이 윤회하는 불교의 윤회관은 음양의 기(氣)로 우주를 보는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인 천지론(天地論)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김용옥씨는 불교의 윤회론을 영혼불멸설로 이해하였다. 불멸하는 무수한 영혼이 윤회하기 위하여 우주에서 난리를 치는(?) 불교의 윤회론은 천지론적 우주관을 가진 동양의 정통 사상에 배치되는 것이며 따라서 정도전은 동양의 사상을 바로 세우는 국가와 정치를 시도하였던 정치 철학자로 묘사되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러한 김욕옥씨의 논리가 광대의 경박함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었다. 김용옥씨를 광대라 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주관, 나아가 존재관(存在觀)을 다루는 중요한 문제에서 그가 보이는 말투며 몸짓의 경박함이다. 진실함이 결여된 경박함으로 대중의 웃음과 박수를 유도한다. 그가 그 경박함 속에서 대중의 박수를 이끌어 내는 무기는 중국의 한자 부수를 해체하면서 독창적인 뜻을 풀어내는 나름대로의 기발함이었다. 하지만 기발함 속에 의미의 진실함까지 함께 매도하는 것은 지식인의 광대 짓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잘 알지 못하면서 일방적인 해석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윤회설을 영혼 불멸설로 해석하는 그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모르겠다. 역사 속에서 불멸하며 이어지는 종교를 성토하기 위해서는 그 종교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예의를 넘어서 지식인의 의무이어야 한다. 하지만 김용옥의 불교 해석에서는 그러한 의무나 예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경박함과 아전인수식의 독선 뿐이다.
불교는 제법무아와 제행무상의 연기법(緣起法)을 근간으로 한다. 무아(無我)의 연기론을 손톱만큼이라도 이해한다면 어떻게 불교의 윤회설을 영혼 불멸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연기법에서의 존재관과 윤회관은 업식 연기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그 업식은 비존재(非存在)이다. 타(他)와 분리되어 나는 이것이다 라고 구분될 개별 존재성을 가지지 못한 것이 무명(無明)의 업식이며 따라서 업식 윤회론은 비존재론적 윤회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김용옥씨는 불교의 비존재론적 윤회관을 존재론적 윤회관으로 왜곡하였다. 더구나 전국으로 전파되는 공개 방송에서 말이다.
김용옥씨가 주장하는 음양 천지론에 따르면, 혼(魂)은 우주의 천지, 즉 음양의 기로 산화(散花)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이나 생명에게 개별적 윤회라고 할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용옥의 논리는 인중무과(因中無果)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부처님이 연기법으로 척파하신 육사외도(六邪外道) 중의 하나가 인중무과설인데, 이 인중무과설은 전생, 현생, 내생으로 이어지는 인과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인중무과의 논리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현생의 삶에서 행하는 업보의 과보를 믿지 않는다. 믿지 않음으로 하여 현생에서 자신의 욕망이 움직이는 대로의 삶을 추구하게 된다. 육사외도 중에서 인중무과를 주장하였던 와이세시까 학파 같은 경우는 실제로 삶은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이 보기에 우주의 진실은 영혼 불멸의 인중유과나 혼백 산화의 인중무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개체가 불멸하는 유(有)도 아니고 개체가 천지 자연에 산화하는 무(無)도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한 부처님의 법문이 바로 연기법이다. 연기법의 업식 연기에서는 인간은 자신의 과보를 물려받게 된다. 지은 업보를 그 형상 그대로 물려받는 것은 아니지만, 어두워지고 탁한 업식의 삶을 산 사람은 윤회에 있어 더욱 어두워지고 탁한 의식의 삶을 내생에 살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탁한 미망으로 인한 내생의 고통 또한 크다고 하는 것이 업식 윤회의 과보이다.
김용옥씨는 비단 불교를 모르면서 불교를 폄하하는 광대 짓에 그치지 않았다. 소위 논리 철학자로 자신을 지칭하면서도 자신의 말을 자신이 스스로 뒤집는 논리의 허구를 보여 주었다. 혼(魂)이나 백(魄)은 자신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는 비존재라 정의하면서도 몸인 백이 급작스러운 죽음을 당할 경우에 혼이 놀라 어쩔 줄 모른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 백이 없는 혼은 비존재라고 정의하였으면서도 백과 무관한 혼의 존재를 주장하는 모순이다.
철저한 사유보다는 학문적 재변에 치중하는 김용옥씨 같은 지식인들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논평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용옥씨의 문제는 국민의 세금인 공중파를 이용해 무수한 대중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기와 자신이 출판한 책을 위하여 대중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역사의 사실까지도 현혹한다. 자신이 주장하는 유교를 강조하기 위하여 정도전과 이씨 조선의 성립을 필요 이상으로 미화하고, 그런 과정에서 고려라는 역사까지도 은연중에 매도하고 있음을 그의 특강 방송에서 느낄 수 있었다. 지식인이 자신의 주장이나 이익을 위해 논리를 왜곡하는 것은 부패 정치인이 국민을 기만하는 것과 하나 다를 바 없는 짓일 것이다.
신용국씨는 <실천불교>(하늘북), <인드라망의 세계 - 유기체세계와 인식자로서의 인간>(하늘북)의 저자이자 귀농생태마을 도리촌(www.dorichone.com)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