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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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들었다> ‘악지식’을 ‘선지식’으로
“…(보살은) 모든 국토 가운데 지옥과 같은 곳이 있으면 애오라지 그곳에 가서 그 고뇌를 없애서 교화하고, 축생처럼 서로 잡아먹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나서 그들을 이익되게 한다.…” <유마경 불도품(佛道品)>

한국 사회에서 ‘성격좋은 사람’ 소리를 들으려면 오관을 닫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관용도’를 최대치로 늘리는 수밖에 없다. 예컨대 전직 대통령 아들의 괴자금에 대해서는, ‘다행이야, 명색이 전직 대통령인데 29만원이 뭐야. 몇백억은 쌓아두고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자. 이승연 누드 사건은 ‘용케도 육신의 무상(無常)함은 제대로 알았어. 그래도 보여줄 만한 몸일 때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하고 봐 주자. 내친김에 ‘차떼기’로 불리는 정치인과 기업의 검은거래에 대해서도 국세청의 수고를 덜 기 위한 ‘소득재분배’로 여기자. 그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세상의 번뇌가 너무 깊다.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탐진치에 빠진 세상을 관하고는 설법을 주저하며 ‘잠자코 편안히 있고자 한’ 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탄식이 있었기에 부처님의 설법은 공허한 청담(淸談)이 아닌 현실의 언어가 된다. ‘삼계화택(三界火宅)’은 비유의 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만약 보살이 비도(非道)를 행한다면 바로 불도에 들 것”이라고 한 유마힐의 역설은 대승정신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보살은 어떻게 비도(非道)를 행하는가. “5무간죄업을 행하지만 번뇌와 성냄 없이 지옥에 가고, 모든 죄업의 때 없이 축생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악지식(惡知識)을 선지식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악평등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이 세간법을 넘은 불법의 진실이다.

윤제학(아동문학가 / 본지 논설위원)
2004-02-25 오전 8: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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