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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감과 안감 속에 솜을 넣어 촘촘히 바느질해 만들어 지는 누비는 얼핏 보면 서양의 퀼트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 107호 누비장 김해자 씨(51)는 누비에는 우리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개성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담겨있다고 강조한다.
“바늘은 거짓말을 못합니다. 내가 누비옷을 만드는 이 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엉성한 옷이 나오고 말지요. 누비는 항상 마음을 챙기고 잡념을 털어내도록 해줍니다.”
그가 처음 불교와 누비에 인연을 맺게 된 데에는 각각 내면의 방황을 겪었던 시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천주교 집안에서 자란 김 씨는 성경공부를 하던 중 느낀 한계 때문에 많이 번뇌했었다고 회상했다. 화두처럼 자신을 지배하는 끊임없는 물음을 씻고자 방황하던 시기, 자신도 모르게 ‘관세음보살’ 정근을 시작하게 됐다. 그 전까지 불경은커녕 절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었던 그였다.
관세음보살 정근으로 발심하게 된 그는 내면의 분별심과 의심을 거둬주는 불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80년대 초, 경봉 스님이 열반에 드시기 직전 1년 동안 스님을 시봉했다. 이후 수덕사에서도 개안불사 관련 봉사를 하며 3년을 기거했다. 이 때 승복에 쓰인 누비를 접하기도 했다.
“그 시기 불법과의 인연이 오늘날 저를 누비장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절에서 3년을 빠짐없이 새벽예불과 봉사를 하면서 진정한 하심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말로만 하심을 강조하면 그것은 강한 상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김 씨가 1996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8년이나 됐지만 아직까지 그로부터 문화재 이수자격증을 받은 제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마음을 챙길 줄 알아야 하는 공예인만큼 이수자의 사람 성품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강조해온 김 씨만의 굳건한 소신 때문이다.
“기능보유자라는 것은 명예보다 더 큰 책임이 뒤따르는 법입니다. 누비장으로서 가장 큰 책임은 저보다 훌륭한 사람이 뒤를 잇도록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누비공예가 어떤 것인지 이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래서 김 씨는 현재 후학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서울과 경주의 문화원을 오고가며 누비공예의 이론과 실기를 가르친다. 모두 80여명의 수강생이 매달 하나씩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김 씨의 지도를 통해 작품을 하나씩 발표할 때마다 자신의 내면과 누비의 기교가 조화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누비를 통해 세계 젊은이들이 우리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체험의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누비공예에 담겨진 용맹정진의 정신을 가르치고, 건전한 경합을 벌일 수 있는 종합교육공간이 마련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