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의 뚜지앙인 경내의 링이앤산(靈岩山)의 산 중턱 해발 1250미터 지역의 암벽에서 쓰촨성 뚜자잉인시의 문물국 전문가가 암벽의 틈새를 조사하던 중, 울퉁불퉁한 글씨로 '당나라의 삼장법사가 서역서 가져온 석판경서는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쓰여있는 암벽을 발견하였다 하는데, 석경의 발견 과정자체도 매우 신기하고 이채로왔다 한다.
이 문물국의 부국장인 삐앤짜이빈(卞再斌)씨는 말하기를, 사료기록에 의거해 보면, 당나라 중요 불교 건축의 하나였던 영암사는 두 곳의 장경동(藏經洞)이 있는데, 그 안에는 당나라 스님이 서역에서 가져온 불경이 있다라고 전해져 왔다. 송~원 시기에, 영암사는 전화를 입어 장경동도 절도 땅에 파뭍혀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최근, 관련부서는 영암산 해발 1250미터 되는 곳에 장경동을 기념하는 석비를 새기기로 하고 공정을 시작하였는데, 석비의 한 쪽 암벽이 시공때문에 무너져 내렸고, 이로 인해 이런 기이한 암벽층을 발견해 내게 된 것이다. 이 암벽층은 지질이 매우 섬세하며, 책 장처럼 층층이 겹쳐 있는 것이 인위적인 조각 작품임이 육안으로도 확연히 구별된다한다.
문물국의 고고학 전문가는 1개월간의 보수작업을 바로 시행하였는데, '서암(書岩)'의 진흙을 벗겨보니, '서암'은 160여 개의 세사암(細砂岩)을 갈아 만든 경판으로 구성되 있는데, 각각의 경판은 길이 8센티, 폭4센티, 두께 3~4센티로 경판마다 모두 당대의 옛 통화인 '개원통보'가 새겨져 있다. 전문가의 고증으로는 경판에는 '다라밀경', '대반야경', '능가경' 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삼장법사가 천축국에서 가져와 국내 승려을 위해 번역한 경문이라고 한다.
여러가지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서암'은 당나라의 석경으로 추정이 가능한데, 서암이 있던 큰 동굴이 바로 장경동의 하나일 것이라고 한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경판이 수천년 동안 습한 동굴속에 있었던 터라, 출토되자마자 바로 부셔져 버린다 하는데, 경판의 원본 보존을 위해, 사진 촬영이나 영상자료등으로 제작한 후 장경동을 다시 막을 것이라 한다.
장경동과 석경의 대중들과의 만남은 아마도 석고 또는 다른 물질을 이용하여 장경동 전체를 감싸 이것을 박물관으로 운반함으로써 이루어질 전망이다.
타이완=이상미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