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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에 스며있는 선인들의 숨결
요즘 흥행 대박을 터트린 영화 제목중에 ‘말죽거리 잔혹사’가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한테 ‘말죽거리’가 어디며, 또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를 물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말죽거리’. 분명 서울 어딘가에 있을텐데, ‘말(馬)’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어렴풋한 짐작만이 난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시대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가던 도중, 지금의 서울 양재역 부근에 유생 김이 등이 쑤어 올린 팥죽을 말 위에서 먹고 갔기 때문에 말죽거리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재야 문화사학자 신정일(50) 황토현문화연구소장이 쓴 <다시쓰는 택리지>를 펼쳐 보면 우리나라 웬만한 지명(地名)의 역사를 알 수 있다. 25년간 우리 산하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며 그 안에 담겨 있는 오롯한 사연들을 채취해 책으로 다듬었기 때문이다.

제목은 <다시쓰는 택리지>다. 이번에는 <경기·충청편(1권)>, <전라·경상편(2권)>, <강원·함경·평안·황해편(3권)> 등으로 팔도총론 편을 펴냈으며 나머지 지리·인심·산수 등 2~3권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원래 우리문화유산 답사기의 원조격인 <택리지>는 조선 후기 이중환(1690~1756)이 쓴 인문지리서다. 조선후기 당시만 해도 <정감록>과 함께 가장 많이 필사된 베스트셀러였다. 사화(士禍)에 연루돼 유배로 젊은날을 보내고, 실의에 빠져 살던 그가 20여년의 방랑생활을 한 뒤에 <택리지>를 썼다고 전해진다.

이에 못지 않게 저자인 신 소장도 ‘오른손에 <택리지>를, 왼손에 대동여지도를 들고 찾아나섰다’고 말할 만큼 우리 땅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한강 영산강 낙동강 섬진강 금강 등 5대 강과 수백개의 산을 오르내리며, 1,000회 이상을 답사했다.

이중환의 <택리지>가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면 250년 뒤에 출간된 <다시 쓰는 택리지>는 우리 산하에 녹아 있는, 또 그곳을 살다간 선인들의 숨결과 발자취를 느끼고자 했다. 우리 현재의 삶이 책 속에 더해진 셈이다. 그러다보니 곳곳에 그사이 사라져버린 나루터와 시장 등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호남에서 유명한 포구가 전남 해남군 현산면에 있던 백방포(白房浦) 였다. 현재의 땅끝 마을 근처이다. 백방포는 중국으로 가던 유명한 바닷길의 출발지였다. 신라의 최치원이나 김가기가 당나라 유학 갈 때 출발하던 곳이었다. 순풍만 만나면 하루 만에 중국 영파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도 이 포구에는 남송으로 출발하는 여행객들이 가족들과 이별하거나 기다리던 곳이었는데, 현재는 간척을 해서 들판으로 변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인문지리로 포괄되는 여러 분야 중에서 역사와 인물지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안의 퇴계, 청양의 이몽학, 안동의 유성룡, 해남의 윤선도, 전주의 정언신, 합천의 정인홍, 평양의 정지상 등 역사적 인물에서부터 무명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통해서 지리적 장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봉화 청량사를 비롯해 공주 영평사, 동해 삼화사, 춘천 청평사, 대구 갓바위, 울산 석남사, 김천 청암사 등 30여 사찰의 역사도 소개돼 있어 불자들에게 유익한 사찰 안내서 역할도 겸하고 있다. 한가지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5박 6일의 짧은 일정만으로 다녀온 북녘땅을 집어넣은 것. 자료에 의존하고 이전 사람들의 답사기를 짜깁기하면서 가지 않은 곳까지 소개한 대목은 역시 발품을 안팔아서인지 땀냄새가 덜났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취지에 대해 “인문지리는 최소 50년 단위로 다시 쓰여져야 되는데 이중환이 <택리지>를 집필한 뒤 250여 년이 지났는데도 불과 몇 십 편의 논문이 나왔을 뿐”이라며 “이 땅에서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명멸해 갔는지 시공을 뛰어넘어 시냇가에서 자갈을 고르듯 들춰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속의 밑줄긋기

▲힘겹게 그 길들을 걸으며 느낀 것은, 산천이 나의 것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것, 그 길들을 올곧게 보존해서 후세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우리 문화유산의 진정성, 그리고 이땅을 살았던 사람들과 이 땅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경주 남산의 불상중 가장 크며 조각이 우수한 불상이 상선암 마애석가여래 대불좌상일 것이다. 아득히 깔린 경주 일대를 바라보는 부처님은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견훤의 군사에게 포위당한 왕건은 신숭겸이 태조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함으로써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였다. 그때 신숭겸·김락 등 여덟 장수가 모두 전사하였으므로 이름을 팔공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다시 쓰는 택리지 1·2·3
신정일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
각권 1만4천원
김주일 기자 | jikim@buddhapia.com
2004-02-16 오전 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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