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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개인전시 때문에 일본에 갔을 때 우연히 고려불화를 봤지요. 우리 것인데 모두 일본에 있다는 것에 분통이 터졌어요. 오기가 생기더군요. 당신들은 비록 종이 그림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천년만년 변하지 않는 도판 불화를 만들어 보이겠다고 각오를 세웠지요.”
그때부터 그의 작업실은 찻잔과 그릇대신 도판불화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도판 불화는 그릇 만드는 것보다 몇배의 시간과 정력이 소비된다. 우선 산청과 문경, 여주에서 파온 흙을 섞어 만든 분청사기로 사각형의 도판을 굽는다. 이때 도판의 두께는 같아야 한다. 도판 작업이 끝나면 고려불화의 초(楚)를 대고 불화 그릴 자리를 양각한다. 초벌과 재벌구이가 끝나면 그 위에 석채(石彩)로 정교한 고려불화를 그린 후 다시 굽는다. 얼핏 들으면 뭐 그리 어려울까 의아해 하겠지만 20시간의 초벌구이(900℃)와 10시간의 재벌구이(1230℃), 이어 10시간의 삼벌구이(1150℃)까지 끝내야 비로소 도판 불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 한 작품 하는데 한달이 소요될만큼 정성이 깃들여져야 된다. 정교함과 화려함으로 종이에 그려도 어려운게 고려불화인지라 도판위에 그리는 데는 남다른 어려움이 많았다. 작업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불화를 그리기 전에 도판이 갈라지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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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채를 구하러 미술품상에 가서 도판으로 불화를 재현한다고 하면 ‘돈키호테같은 미친짓’ 이라며 냉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말에 신경쓸 것이었다면 애초 흙을 만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변에서 완성된 도판 불화를 보고 그저 “기도하고 싶은 발심이 생긴다”는 말이면 족했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현재 1m 가 넘는 크기의 ‘지장보살’, ‘수월관음도’, ‘백의관음도’ 등 13점을 완성했다. 앞으로 5월 전시까지 10여점을 더 만들 계획이다.
고려불화 재현 작가인 강록사씨는 “흙의 특성상 색채를 내기가 쉽지 않은데 10여가지의 석채로 붓질을 수십번 해가며 고려불화를 그려낸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라며 “완벽하게 재현하지 않더라도 임씨의 작업은 고려불화를 다른 질감을 이용해 재현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먼 길을 돌아온 임남재 씨의 영혼의 그릇은 바로 그가 신명을 바쳐 만드는 한점 한점의 도판 불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