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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말 씨는 인도 다람살라 사찰에 수많은 불화를 조성한 티베트 전통불화가로 요즈음 이곳 대원사에서 역사상 유래가 없는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 선지식들의 진영을 티베트 불화 탕카(Thangkas)양식으로 조성하고 있는 것. 현재 믹말 씨가 작업 중인 큰스님 탕카는 송광사 전 방장 구산 스님과 지난해 입적한 성륜사 조실 청화 스님이다.
티베트 탕카는 한국불화의 괘불과 같은 양식으로 주존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이지만 때론 보살이나 큰스님을 그리기도 한다. 한국의 탱화는 크고 절에서만 참배할 수 있지만 티베트 탕카는 작고 둘둘 말아 누구나 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다. 티베트에서는 각 가정마다 탕카를 모셔 조석예불은 물론 집안에 드나들 때마다 예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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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점심공양 이외에는 줄곧 혼자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번 그림은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초상화 기법을 탕카에 처음 시도하는 것으로 워낙 세심한 부분이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습니다.”
부처님 상호를 그릴 때 신심이 절로 난다는 믹말 씨. 어려서 탕카를 처음 배울 때 3년간 연필로 부처님 상호-몸통-장식물 순으로 스케치만 했다. 그러다 2년 넘게 채색하는 법을 익히고서 스승으로부터 인가 받아 독자적으로 탕카 제작에 들어갔다.
티베트 불화는 사리불이 제시한 제작법에 따른다. 신체뿐 아니라 복장, 장엄구 등 모든 피사체가 정확한 비율과 형태로 통일되어 있다. 티베트 불화가라면 스케치를 배우는 단계일 때 신체 각 부분을 비율에 따라 그리는 연습을 거듭 반복하기 때문에 인물을 그릴 때는 말 그대로 눈감고도 그릴 정도다. 그렇지만 이번 큰스님 탕카는 예외다. 탕카에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옷을 입듯 속옷에서부터 한겹한겹 붓으로 옷을 입혀야 한다. 그래야 탕카 주인공의 옷을 입고 있는 품새가 나고 금방이라도 일어설 듯 하다.
큰스님 탕카를 그리면서 믹말 씨는 섬세한 부분의 붓 터치 땐 숨을 장시간 멈춘다. 잠깐이라도 숨을 쉬기 위해 붓을 멈추면 그림의 생명까지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한 구산 스님 탕카를 보고 있노라면 살아 숨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러니 누구든 탕카 앞에 서면 저절로 합장 예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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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에 개관한 티베트 박물관에는 주지 현장 스님이 15년 전부터 모은 티베트의 탕카, 만다라, 밀교법구, 민속품 등 1000여점의 티베트 미술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이번 큰스님 탕카 제작도 티베트 불교 문화보급에 앞장서오고 있는 현장 스님의 원력으로 시작됐다.
“조사전이나 진영각에만 모셔져 있는 큰스님 진영을 재가불자의 가정으로 옮겨 생활 속의 불교로 이끌고자 했습니다. 그러기위해 티베트 탕카를 이용한 것입니다. 큰스님 탕카가 완성되면 인쇄물로 다시 제작해 인연 있는 신도들에게 보급하고자 합니다.”
그 첫 작업으로 은사인 구산 스님과 선방 수좌시절 많은 가르침을 준 청화 스님을 추모하는 뜻에서 우선적으로 시작했다. 다음엔 조선조말 차의 중흥조 초의 스님을 예정하고 있으며, 계속해 큰 스님들의 탕카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청화 스님 탕카를 마무리하고 있는 믹말 씨의 작업은 이달말경 모두 완성된다. 대원사는 큰스님 탕카를 오는 4월1일부터 3개월간 대원사 티베트 박물관에서 ‘티베트 왕궁화가 특별전’을 갖고 박물관에 보관할 예정이다. 특별전에는 믹말 씨와 티베트 왕궁화가들의 탕카가 함께 전시된다. (대원사 티베트 박물관 061-852-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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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남달리 그림에 소질이 있던 믹말(Migmar·36세) 씨는 13세 때 티베트 라사에서 탕카의 명인 ‘폽겔’ 산하에 들어가 그림공부를 하고, 인도로 망명해 다람살라 티베트 도서관에서 5년간 ‘샹게이시’ 스님 밑에서 탕카를 그렸다. 그 후 왕궁화공이 되어 후진양성을 하다 2년 전 한국에 와서 한국 불화와 티베트 탕카를 비교 연구하고 있다.
“티베트 불화는 꽃이나 자연환경이 자주 등장하는데 한국 탱화는 불상위주로 구름장식이 많으며, 입체감을 표현하는 데에도 티베트는 바탕 위에 덧칠을 하는데 반해 한국은 그림을 먼저 그리고 농도(물을 이용)의 강약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고 양국의 불화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했다.
믹말 씨는 또한 “부처님 상호도 한국은 노랑과 황금색 위주이지만 티베트는 빨강 노랑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표현한다”며 “티베트 불화는 사리불이 제시한 기법에 의해 상호, 수인, 비율을 정확하게 그리는데 반해 한국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그려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믹말 씨는 “티베트의 전통불화는 중국이 1979년부터 티베트 문화를 허락하면서부터 다시 살아나고 있어 아직 탕카를 제작할 인재가 흔치 않다”고 소개하고 한국의 큰스님 탕카 조성을 계기로 집집마다 불화를 모셔 불자들의 수행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