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단의 양성평등 문제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간헐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해 1990년대 불교의 여성학적 접근, 2000년대 팔경법에 대한 문제제기 논란으로 이어져 왔다. 이런 가운데 2월 16일 실상사에서 열리는 제9회 선우논강(대표 철오)에서는 비구·비구니 승단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을 논하는 자리를 마련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이번 논강에서는 법인 스님(대흥사 수련원장)이 비구 스님으로는 처음으로 팔경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 관심을 끈다.
이와 함께 올해 국내에서는 ‘한국 비구니 국제학술대회’, ‘세계여성 불자대회’가 개최돼, 이번의 선우논강이 비구니 위상 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선우논강은 ‘초기불교 이부중(二部衆)과 바람직한 오늘의 승가상’을 주제로 도법 스님(前 실상사 주지)의 기조강연에 이어 법인 스님이 주제발표를, 혜능 스님(해인사 율원장), 진오 스님(대둔사 주지)이 논평에 나선다.
법인 스님은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오늘날 바람직한 비구·비구니 관계 정립과 승가상을 세우기 위해 팔경법은 원점에서 무효화하고, 동등한 수행자의 입장에서 재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문헌=완전무결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엄정하고 비판적인 태도로 이를 점검하라고 지적했다. “부처님은 부처님의 말이라도 스스로 생각했을 때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버리고 받아들이지 말라고 가르쳤다”며 “부처님도 그 시대의 사회 환경을 참조해 설법했으며, 직계 제자와 후대 제자들 간에 달랐던 의견이 후대에 경과 율장에 삽입됐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법인 스님은 여인오장설의 구체적인 모순점을 들며 “도저히 부처님의 친설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여인오장설이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부처님 말씀에 어긋나고,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정법이 오백년 감소했다는 결정론적 사고방식은 ‘무아와 연기’라는 부처님 뜻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인 스님은 불가의 여성차별을 논할 때 특히 문제가 되는 팔경법에 대해 “팔경법이 부처님에 의해 일부 만들어지고, 일부는 역사적 과정에서 후대에 첨가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에 무게를 두고 싶다”고 밝혔다. 팔경법의 조항들이 시대 상황과 법 정신에 합당한가에 대해서는 “승가의 위계는 출가한 연령으로 확립되며, 깨달음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비구·비구니의 상하 위계문제는 명백한 불평등이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친설이라면 당시의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서 비구니를 보호하고 비구니 승가를 유지하기 위한 임시적이고 특수한 방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법인 스님의 주장에 대해 논평자 혜능 스님과 진오 스님은 뜻을 달리하고 있어 이날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혜능 스님은 “율장은 불설이기 이전에 지금까지 승단을 유지시켜온 승단의 존재 근거”라며 “세간의 법으로 출세간의 법을 해석해선 안되며 율장을 바꿔야한다는 주장은 율장에 대한 이해부족이 초래한 결과”라고 주장, 기본 교육 커리큘럼에 ‘계율’을 공부할 기간을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러나 논평문에서 비구니와 비구 용어를 바꾼 팔경법을 제시한 진오 스님은 “팔경법은 생명존중과 평등사상을 가르친 부처님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팔경법의 폐지보다는 시대흐름에 수용 가능한 양성 평등의 청규를 제정해 변화하는 교단을 만드는 것이 한국 불교의 글로벌 전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