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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현판에서 느끼는 生筆, 추사 김정희
김택영
선생의 용필(用筆)은 공(空)의 상황에서 갑자기 굵고 가는 획이 자유롭게 전환하는데 모두 오묘한 이치가 담겨있어서 마치 마른 소나무나 묵은 등나무 같기고 하고 규룡이 엉키고 용이 휘감는 것 같기도 하며, 또 종정(鐘鼎)의 구름과 우뢰무늬 같기도 하여 변화가 무궁하고 신비를 헤아릴 수 없으니 어찌 감히 이름 지을 수 있고 어찌 감히 표현할 수 있겠는가.
- 정축년(1877, 고종 14) 중앙절에 문생 허련 소치 삼가 쓰다.-

추사체(秋史體). 모든 선입관을 놓고 무심한 마음으로 바라봤을 때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서체. 세예를 예술적 경지로 전환시켜 미도합일(美道合一)의 경지에 올려놓은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서예세계 ‘추사체의 진수-과천시절 추사글씨 탁본전’과천시와 한국미술연구소 공동주최로 2월 4일부터 18일까지 과천 시민회관 전시실에서 펼쳐진다.

일주문 현판
이번 전시회는 추사 선생이 타계하기 사흘 전 남호 스님(永奇, 1820~1872)의 부탁으로 썼다 전해지는 봉은사 현판 ‘판전(版殿)’을 비롯 대흥사 ‘소영은(小靈隱)’ 통도사 ‘성담상게(聖覃像偈)’‘노곡소축(老谷小築)’ 등 사찰 현판 탁본 40여점이 출품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밖에 목판 글씨첩 11종과 금석문 탁본 12점, 쌍구본 2종 목각 5종이 선보인다.

봉은사 판전은 추사가 자신이 쓴 편액 중에 스스로 괜찮다고 평했을 만큼 말년 추사의 서예관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동자체(童子體)라고 불리기도 하는 판전은 글자형태 파괴나 서체에 기교를 부리지 않아 소박한 맛이지만, 그 안에서 힘을 느낄 수 있는 고졸(古拙)한 작품이다.

대흥사의 ‘소영은’과 통도사 ‘성담상게’ 등은 일반인에게는 처음으로 공개돼 그 의미를 더한다.

완당탁묵
은해사의 절 현판과 대웅전(大雄殿), 불광(佛光), 보화루(寶華褸)의 현판들 역시 모두 추사작품. 전시회를 기획한 문우서림 김영복 대표는 “은해사에 남아있는 작품들은 추사가 과천에 유배됐던 64~65세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봉은사의 판전 글씨처럼 졸박하면서도 강건한 힘이 들어있어 추사의 대표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한 통도사의 ‘성담상게’와 ‘노곡소축’ 등은 19세기 통도사에서 이름이 떨친 대강백 성담(聖潭) 의전 스님(儀典, 생몰연대 미상)과 노곡이라는 스님과의 친분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당시 추사가 유림 등의 사대부는 물론 불교계와도 밀접한 교분을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 추사는 평생 교분을 가진 초의 스님(意恂, 1786~1866 다도 중흥시킴)을 위해 대흥사 노전(爐殿)현판 일로향실(一爐香室)과 동국선원(東國禪院)을, 은해사 말사 백흥암에는 산해숭심(山海崇深)을, 추사 집안의 원찰인 화암사에는 무량수각(無量壽閣)을, 쌍계사 중국 육조대사 혜능 진영탑 전각 위에는 세계일화(世界一花) 등 수 많은 현판을 걸어놓았다.

上-일로향각, 中-판전, 下-소영은
추사는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을 피던 당시, 왜 이토록 많은 사찰에 현판을 남겼을까?

추사의 서예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고려대 보건대학 김영환 명예교수는 추사가 글씨로 세상에 많이 알려져서 알지 못할 뿐, 원래 서예보다 금석학, 불교학, 경학(經學) 등의 학문에 더 조예가 깊었다고 말한다. 특히 불교학에 능통했고 초의·의전 스님 등 여러 고승들과 친분이 두터워 사찰에 많은 글씨들을 남겼다는 것이다.

서예가들 역시 추사의 현판작품들을 추산하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현재 확인되는 추사 현판 중 절반가량이 사찰의 현판이라고 말한다.

한국미술연구소 홍선표 소장은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대부분 추사 말년의 작품들로 추사체 특유의 졸박기고(拙朴奇古의)한 파격적 조형미와 구성미에 의한 시각적 자극이 본성과 잘 조화된 작품들”이라며 “각 사찰마다 찾아다니며 추사글씨를 접하기 힘든 만큼 이번 탁본전시회는 추사의 예술관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3677-2064
김은경 기자 | ilpck@buddhapia.com
2004-02-05 오전 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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