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법 스님(남원 실상사 주지)이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등의 언행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옹호하는 내용을 한 일간지 칼럼에 싣자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글을 성법 스님이 본지에 보내왔다.
‘도법 스님의 노 대통령 옹호 발언에 이의’라는 제목의 글에서 성법 스님은 “서민적이고 평상적인 말투가 권위주의와 권력의 칼을 내려놓는 것은 아니다”며 “그 후의 재신임 발언과 최근의 수도 천도 등의 표현의 보면 ‘권위주의와 절대 권력의 칼을 내려놓은 일’이 스님과 국민의 ‘희망사항’일 뿐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도법 스님과 뜻을 달리했다.
또한 성법 스님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후에 나라가 잘 되어 간다는 최소한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쪽도 그런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며 “정작 놀라운 일은, 자기들은 ‘다르다’라고 피해의식에 항변하던 그들도 너무나 짧은 시간에 그들이 개혁의 대상이라 여겼던 이들과 너무나 똑같아져버린 현실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성법 스님은 “도법 스님의 지금까지의 불교내의 현실문제와 개혁의 인식에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또 함께 걱정한 적도 있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내심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 중 하나임을 밝혀둔다”는 전제를 깔아 이 글이 단순히 비판을 위한 비판은 아님을 미리 밝혔다.
성법 스님은 <화엄경> 등 불교 경전 자료를 인터넷에 올리는 인터넷 불사를 하고 있는 스님으로 현재 ‘세존사이트(www.sejon.or.kr)’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성법 스님이 본지에 보내온 글의 전문입니다.
■도법 스님의 노 대통령 옹호 발언에 이의
#도법스님의 시국관에 이견을 표하기 전에 소승은 도법스님의 지금까지의 불교내의 현실문제와 개혁의 인식에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또 함께 걱정한 적도 있습니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내심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 중 하나임을 밝혀둡니다.
이번 도법스님의 노대통령에 관한 옹호의 글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첫째, “‘노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발언한 것은 권위주의와 절대 권력의 칼을 내려놓은 일”이라고 했는데, 그 발언 당시의 대통령은 실제 국민에게 투정 부리듯이 대통령 되면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다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되고 보니 ‘딴죽 거는 것이 많아’ 못해 먹겠다는 무책임 한 발언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 후의 재신임 발언과 최근의 수도 천도 등의 표현을 보면 노대통령은 도법스님 말씀대로 ‘권위주의와 절대 권력의 칼을 내려놓은 일’이 스님과 국민의 “희망사항”일 뿐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서민적이고 평상적인 말투가 권위주의와 권력의 칼을 내려놓는 것은 아닙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은 말 한마디 마다 권위가 있어야 하고 주어진 권력을 제대로 쓰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백보 양보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도법스님 말과 같다 하려면 그 분이 대통령이 된 후에 나라가 잘 되어 간다는 최소한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쪽도 그런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둘째, “대통령 자신과 측근들이 만신창이가 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놀라운 일을 했음에도 시장바닥의 놀림감으로 취급되고 있어 안타깝다”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어찌 놀라운 일입니까?
정작 놀라운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고 초기의 압도적 지지율에서 불과 몇 개월도 안돼 과거 어느 대통령에게서도 느낄 수 없었던 엄청난 실망감을 줄 수 있는 대통령의 능력과 자기들은 ‘다르다’라고 피해의식에 항변하던 그들도 너무나 짧은 시간에 그들이 개혁의 대상이라 여겼던 이들과 너무나 똑같아 져버린 현실입니다.
다른 많은 이유로 도법스님의 시국관에 동의 할 수 없습니다만 도법스님께 누가 될까 염려되어 그칩니다.
성법 스님ㆍ세존사이트(www.sejon.or.kr) 운영자
※다음은 경향신문 1월 30일자에 게재된 도법 스님의 칼럼 전문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판단을 돕기 위해 칼럼 전문을 싣습니다.
■[생명평화 이야기]뽑을 싹, 가꿀 싹
요즈음 분위기로 볼 때, 이 글이 나가면 이런저런 논란이 있을 듯하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까닭이 무엇일까. 삶의 문제들을 좀더 차분하게 경우를 따져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살다보면 알다가도 모를 일들이 참 많다. 민심의 변덕인지, 세상의 변화인지 혼란스럽다. 지식인들과 신문 방송의 계산된 의도인지 헤아릴 길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고부터는 더욱 그렇다. 우리 현대사에서 절대 권력과 권위주의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온 세월이 얼마인가. 참으로 멀고도 험준한 고갯길을 넘어 왔다.
장기독재인 유신체제가 무너질 때 우리 모두는 막힌 숨을 토해내며 환호했다. 6ㆍ10항쟁을 통해 권위주의의 철책이 무너질 때 너도나도 희망을 꿈꾸기 시작했다. 굽이굽이 파란만장한 세월이었다. 그 이후 오늘까지 여러 사람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 대통령도 처음엔 권력을 독점하지 않겠다고 했다. 저 정부도 큰 목소리로 권위주의를 버리겠다고 했다. 우리 모두는 기대에 부풀었다. 잘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결과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고 말았다. 대다수 사람들이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脫권위 대통령 되레 놀림감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는 과정과 취임 이후 몇 가지 행보에서 기대를 갖게 되었다. 대부분 화려한 말잔치로 끝났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기대감을 가질 만한 구체적인 몸짓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권위주의와 절대 권력의 칼을 내려놓은 일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인간적 속마음을 내보여선 안 된다는 권위주의의 관행에 충실했다. 절대 권력의 칼을 거머쥐는 일에 전심전력했다. 국민들에게 위엄 있는 대통령, 힘 있는 정부로 군림했다. 그러나 어느 정부도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했다. 과거 대통령 그 누구도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했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어떠한가.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인간적 속마음을 내보임으로써 권위주의의 울타리를 허물어 버렸다. 손에 쥐어진 사법의 칼을 원주인에게 넘겨줌으로써 절대 권력의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칼날에 의해 대통령 자신과 측근들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놀라운 현상이다.
오랜만에 권력의 칼이 공평하게 쓰여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의 싹을 보게 되었다. 곰곰이 헤아려보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권위주의와 절대 권력의 그물에서 벗어나려고 노심초사해온 세월을 생각하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권위주의와 절대 권력을 내려놓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시장바닥의 놀림감으로 취급되고 있다. 해도 너무 한다 싶어 어안이 벙벙하다.
가능성의 싹을 가꾸려는 움직임은커녕 새싹을 짓밟는 데 앞장서는 것이 시대의 지성인 양 호들갑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문제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통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 대통령이 그 대통령처럼 보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둑놈이기는 매 마찬가지라고 할 법하다.
하지만, 건강한 상식으로 살펴보면 분명한 차이점들이 있다. 문제아라고 다 똑같은 문제아가 아니다. 쫓아내야 할 문제아도 있고 참회시켜 잘 다듬어야 할 문제아도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엄연히 다르다.
언론ㆍ지식인마저 부화뇌동
다른 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바로 지식인이다. 똑같아 보이지만 확실한 차이점이 있다. 차이점을 명확하게 가려 볼 수 있도록 하는 무대가 신문 방송이다. 말꼬리를 물고 호들갑을 떠는 통속적 지식인 노릇은 끝내야 한다. 그 놈이 그 놈이라고 한 묶음으로 취급하는 속 보이는 신문 방송의 역할은 그만두어야 한다. 늘 정치인들에게 욕심을 비우라고 하지 않았는가.
올해는 신문 방송과 지식인 스스로가 속됨과 경박함을 내려놓는 행동을 보여줬으면 한다. 뽑아내야 할 싹인지 가꾸어야 할 싹인지 잘 골라 가꾸게 함으로써 희망의 싹을 키워내는 지식인과 신문 방송이 되었으면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들의 희망인 생명평화의 싹도 무럭무럭 자라나게 될 것이다.
도법ㆍ남원 실상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