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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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茶 알리는 스님들
조르르 물 따르는 소리와 찻물 끓는 소리에 이어 향기로운 차향이 방안 가득 퍼진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차 한 잔 마시는 순간의 여유로움은 굳이 불자이거나 차인이 아니라도 한 번 쯤 겪어보았을 즐거움이다.

불가에서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깨달음의 방편이다. ‘차나 한 잔 드시오(喫茶去)’는 조주 스님의 공안이나 ‘선다일미(禪茶一味)’로 대표되는 선차(禪茶) 문화는 불가에서 차가 어떤 의미인지를 잘 보여준다.

차문화의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조선시대부터 차문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1970년대까지 그나마 우리 차문화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불가의 차문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차문화의 중흥조인 초의 스님의 뒤를 이어 차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스님들을 소개한다.

선차의 대가로 존경받는 불갑사 조실 수산 스님. 세수 80이 넘은 스님은 지금도 봄이면 500여 평이 넘는 불갑사의 차밭에서 직접 찻잎을 따고 무쇠솥에 덖어 차를 만든다. 만암 스님에게서 차를 배운 스님은 무쇠솥과 돗자리에서 아홉 번을 덖는 전통제다법을 60여 년이 넘게 지켜오고 있다. “채다(採茶)할 때의 향기와 아홉 번 덖은 후의 맛이 일치해야 진정한 선차(禪茶)”라는 스님은 “찻잎을 덖으며 죄업을 참회한다는 의미에서 시작한 차 만드는 일이 내 수행의 방편”이라고 말한다. 저녁 공양 후 서옹 스님과 차를 마시다 열반에 든 만암 스님의 뒤를 이어 선차문화를 이끌고 있는 수산 스님의 차사랑 덕분에 오늘날까지 불갑사의 차 향기가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부산 미륵사 주지 백운 스님은 초의의순 스님과 여암선기, 쌍수일한, 응송영희 스님으로 이어져오는 다맥(茶脈)의 전수자로 알려져 있다. 제6회 명원차문화대상 학술상을 받기도 한 스님은 지난해 ‘초의다맥 한국선다회’를 발족하고 쌍계사에서 다맥 전수식을 개최했다. ‘초의 스님의 다맥을 공식적으로 전수하고 그 뜻을 기린다’는 뜻으로 선다회를 결성한 백운 스님은 앞으로 선다회를 법인으로 등록하고 매년 쌍계사에서 차맥전수식과 차문화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직접 차를 재배하며 차회나 단체를 이끌고 있는 스님으로는 파계사 성우 스님과 선암사 지허 스님, 일지암 여연 스님, 석정원차회 선혜 스님, 다성사 용운 스님 등을 들 수 있다.

불교TV 회장이자 대구 파계사 주지인 성우 스님은 96년 불교텔레비전의 ‘차문화 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차문화 대중화에 앞장섰다. 파계사 차회 ‘불이다회’를 이끌고 있는 스님은 불교TV문화원에서 다도강좌를 열기도 했다. 시인이자 명상태교 전문가로도 널리 알려져있는 스님은 차 생활에서 얻은 화두를 선사상과 접목시킨 책 <다도>와 시집 <차향기>를 펴냈으며 다촌문화상과 초의차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불교계의 이름난 차 전문가인 지허 스님과 여연 스님은 지난해 ‘전통차 논쟁’으로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허 스님은 지난해 1월 펴낸 <아무도 말하지 않은 한국 전통 차의 참모습>이라는 책에서 “일본 녹차는 쪄서 말린 것이어서 우려내면 녹색이 나고 풋비린내가 나지만, 한국 전통 차는 자생 차나무의 잎을 손으로 덖고 비벼서 만든 것으로 우려내면 다갈색이고 구수한 숭늉냄새가 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여연 스님은 ‘다갈색에 숭늉내가 난다는 말을 차를 너무 심하게 볶거나 태웠기 때문’이라고 반박하는 등 지상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다도’라는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눈으로는 색을 보고, 코로는 향을 맡고 입으로 그 맛을 음미하면서 그저 각자 성품에 따라 차의 진정한 내용에 몰입하는 것이 우리 고유의 다도라는 데는 의견을 함께 하기도 했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차를 만들어온 지허 스님은 찻잎을 두께 1㎝의 무쇠솥에 아홉 번 덖고, 멍석에 아홉 번 비벼 만드는 방식을 취한다. 스님은 매달 일반인들을 초대해 직접 만든 차를 나누어 마시며 우리 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이 ‘산중다담’에 참가했던 임권택 감독과 김선두 교수(중앙대)를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이 모여 한국전통자생차보존회를 결성하고 전통차 보급과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초의선사가 주석했던 일지암 암주를 맡고 있는 여연 스님은 형식에 매인 차문화가 아닌 생활 속의 차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효당 스님에게서 차를 배운 스님은 76년부터 차를 만들기 시작해 77년 국내 최초로 결성된 ‘다도회’의 간사를 거쳐 78년 한국차인연합회 고문으로 일지암 복원에 참여했다. 91년 일지암 암주 소임을 맡은 후 98년 ‘일지암 초의차문화연구원’을 열고 2백여 명이 넘는 제자를 길러냈다. 지난해 말에는 광주 예술의 거리에 연구원을 마련한 초의차문화연구원은 서울과 광주, 순천 등 12개의 대회를 운영하고 있다.

다성사 주지 용운 스님은 97년부터 전남 무암군과 함께 무안군 삼향면 초의선사 생가터에 생가를 복원하고 ‘초의선사 기념관’과 ‘차문화관’을 설립하는데 앞장서는 등 지역 불교 차문화 전파에 힘쓰고 있다. 90년 초의문화재단을 설립한 스님은 97년 5월 ‘초의스님의 달’에 서울 인사동 초의선원에 실물크기의 초의선사 목각좌상을 봉안하기도 했다.

성신여대 예절다도학과 교수이자 석정원차회를 이끌고 있는 선혜 스님은 학계와 다도 모임을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성신여대에서 열린 제17회 국제차학술 심포지움에서 다구전시회와 차 관련 그림, 차꽃 사진, 의복 전시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80년 석정원차회 연구실을 개원, 다도 교육을 시작한 스님은 87년 서울 인사동에 불교전통문화원을 열고 다도 교육을 하고 있다. 그동안 사원전통차례인 불전헌공다례와 부도다례 등을 발표하기도 한 석정원차회는 대전과 울산, 부산, 춘천, 제주도에 지회를 두고 있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4-02-02 오전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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