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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나눔' 기법 적용하는 건축가 이일훈씨
사진=박재완 기자
그가 지도를 보고 있다. 집과 도로의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담아낸 지도다. 집의 형상이나 높낮이조차 생략된 지도에는 대지경계선과 건축물의 외곽선만이 단선으로 처리돼 있다. 이 단순한 그림에서 그는 몇 가지 ‘꺼리’를 읽어낸다.

“방향과 관계없이 두 채를 똑같이 지은 A집과 B집은 분명 부동산 업자가 동시에 지은 건물일 테고, 북쪽 대지경계선에 바짝 붙은 C집은 일조권 규정이 없을 때 지은 집이 틀림없어요.”

그를 따라 곰곰이 지도를 뜯어본다. 도로선과 맞추느라 찌그러진 집, 도로에서 물러나 앞마당을 키운 집, 길가에 나앉고 뒷마당을 확보한 집…. 그는 한 장의 지도에서 집과 길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끌어냈다. 1월 19일 건축가 이일훈(후리건축 대표·51)씨와 만나 나눈 ‘가가불이(街家不二)’ 담론의 서두였다.

“효율에만 급급하던 결과입니다. 건축에서는 공간을 하나로 모아 끊임없이 내부화하려고 했죠. 건물 외부 공간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구획된 내부에서의 편리만이 오직 고려의 대상이었죠.”

외부와 차단된 건물에는 음습한 어둠만 드리우고 건물 사이의 좁은 공간 역시 건축법이 정한 최소 규격에 지배되는 우리네 도시. 도면을 밀치고 자세를 고쳐 앉은 그가 담배를 태워물며 도시의 ‘못마땅함’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동선(動線)의 최소화를 추구해 한 덩어리 공간을 만들긴 했지만 그렇게 해서 좋아진 것이 무엇이며, 하나로 통합된 공간에서 소위 공동체적인 정을 나누긴 했을까를 되묻는 건축가. ‘효율적인 공간은 편리한 공간이며 편리한 공간은 선한 공간이다’는 세기를 풍미한 건축론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이다.

“타성에 젖은 사고와 행동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것들을 깨부수는 혁파, 그것이 제 작업의 근간입니다. 지금의 새로운 정신으로 시대의 보편을 담아내는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 변혁을 이끌어내는 시도 말입니다.”

사고의 틀을 깨고 규정을 뒤엎는 그의 작업에 다분히 선(禪)이 녹아 있다. 그러나 그는 선과 건축의 연관성에 대한 기자의 질문 공세를 “입으로 내뱉으면 이미 선이 아니다”며 단칼에 잘랐다. 단지 진정한 ‘편안함’을 호도하는 건축계 현실에 반기를 들고 싶었고, 그 못마땅함을 개선하고자 ‘채 나눔’이라는 건축론을 실제 설계에 적용했을 뿐이란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고안해 낸 ‘채 나눔’ 기법은 개인적인 실험을 넘어서 90년대 이후 건축계의 화두가 됐다.

“채란 사랑채, 행랑채라고 부를 때의 ‘채’요, ‘나눔’은 공유와 분리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는 ‘나눔’이죠. 채를 나누고(分離) 그렇게 떨어뜨려 생긴 빈 공간을 타인과 나눈다는(共有) 의미쯤 될 겁니다.”

그의 채나눔 건축기법 핵심에는 ‘불편하게 살자’, ‘밖에 살자’, ‘늘려서 살자’라는 독특한 철학이 배어 있다. 방과 방 사이를 떨어뜨리고 동선을 늘려 불편하게 사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내부를 외부로 끌어내 바깥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자는 생각이다. 집 한 채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을 따로 지어낸 우리네 한옥구조를 상상하면 된다. 극단의 경우 방과 방 사이를 이동할 때 비바람을 맞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그의 의도된 설계다. 그 공간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만나고 또 길(街)과 집(家)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97년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한 그의 ‘가가불이(街家不二)’는 그것에 기초해 도출된 건축으로, ‘하나인 동시에 둘이 존재하는’, 또는 ‘둘인 동시에 하나로 존재하는’ 불이(不二)건축의 의미를 살려낸 작품으로 꼽힌다.

이 씨의 이 같은 생각은 종교건축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됐다. 그가 지은 안성 도피안사 향적당은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기둥으로 띄운 방아래 활공루라는 빈 공간을 통하도록 설계해, 다분히 폐쇄적이었던 절의 내부 공간을 외부로 끌어냈다. 옥상 끝 계단꼭대기에서는 풍경의 울림으로 바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하늘의 문을 마련해 도솔천을 형상화했다.

이 같은 설계방향에 재료의 변혁도 이어졌다. 이 씨는 ‘지금-여기’의 보편을 담은 콘크리트로 절집을 지어올렸다. 재료는 좋고 나쁜 것이 없으며 단지 쓰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뿐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도저도 아닌 전통복제형 건축은 오늘에도 내일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백 년 쯤 지나 사찰건축을 평가해 볼 때 절충식 목조건물은 역사의 블랭크로 남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혁파를 담아낸 이일훈 씨의 건축은 외관상 별다른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순한 회색집에 끊임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축과 학생들을 보고 동네사람들은 ‘저집이 뭐가 좋다고 찍냐’는 반응이다. 그래서 그는 독백처럼 내뱉는다.

“지나는 사람은 그 집에 살지 않는다. 그 집에 들어가 보라고. 건축학을 전공해도 껍데기만 관심있게 보니 일반인들이야 오죽할까.”

거침없는 얘기를 무심히 쏟아내는 그에게 말머리를 틀어 ‘파주 출판단지’와 ‘헤이리 아트밸리’ 설계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나 홀로 설계 관리한 작업이 아니기에 그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공동건축 작업에 초청된 건축가의 ‘n분의 1’일 뿐입니다.”

그는 끝까지 기자의 선입관을 무너뜨렸다.

△건축가 이일훈은?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김중업 건축연구소를 거쳐 설계집단‘후리’를 설립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전시회와 공동저술 그리고 경기대학 출강 등 실속없는 나다님과 번잡함을 경험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의 폭넓은 활동과 명쾌한 건축강의는 정평이 나있다.‘가가불이’주택으로 서울시 건축상(97),‘재색불이’민박채로 강원도 건축상 특별상(98) 등을 수상했으며,‘도피안사 향적당’,‘자비의 침묵 수도원’,‘문학과 지성사 사옥’, ‘기차길옆 공부방’등을 설계했다. 현재는 파주출판단지와 헤이리 아트밸리의 초청 건축가로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강신재 기자 | thatiswhy@buddhapia.com
2004-01-28 오전 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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