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는 물건, 헌 물건 등을 교환 혹은 판매해 그 이익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는 취지로 이뤄지는 바자(bazaar). 싸고 다양한 물건을 서로 판매, 교환함으로써 나누는 삶과 남에게 베푸는 자선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불교계에서도 바자회, 알뜰시장 등을 통해 나눔의 정신을 전하려는 노력이 수년 전부터 있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산하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경불련)은 지난 2000년 서울 동대문구 용도동에 환경 알뜰가게인 ‘내친구 초록이’를 열어 재활용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서울 화계사도 이웃종교와 함께 4년 전부터 ‘불우이웃돕기 공동바자회’를 개최해왔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역시 1998년부터 먹거리나누기운동협의회 등을 통해 신도들을 대상으로 바자회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불교계에서는 나눔문화가 1회성이나 단발적인 행사에 그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구체적인 바자운영에 대한 프로그램, 교육, 인력 등이 부족한 탓이 크다. 사회적으로 나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 불교계는 보시문화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바자의 벤치마킹을 통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다.
△ 8년째 열린 맑고 향기롭게 알뜰시장
불교계에서는 드물게 8년 가까이 성공적으로 운영되어 온 길상사의 ‘맑고 향기롭게 알뜰시장’. 매월 셋째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길상사 경내에서 재활용의류 및 각종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무공해 농산물, 자연화장품 등 각종 환경상품도 판매한다. 매달 모아진 판매 수익금은 수재민 돕기 등 불우이웃을 위해 쓰인다. 500원, 1000원짜리 물건들을 팔아 모인 지난해 총 수익금은 6백만 원 정도였다.
이 알뜰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한 바자회가 아니라는 것. 맑고 향기롭게의 연혜숙 간사는 “아나바다 정신을 실천하고 이웃을 돕는데 목적이 있지만 바자회에 그치지 않는다”라며 “재활용, 환경상품을 통해 자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환경운동의 역할도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 나눔문화의 선두주자, 아름다운 가게의 성공비결
현재 한국의 나눔문화를 이끌어 가는 선두주자는 아름다운 가게다. 아름다운 가게는 2002년 10월 안국점을 1호점으로 시작해 1년 만에 삼선교, 독립문, 홍대, 서초, 신대방, 동대문, 광주, 경기 안산 등 전국 11곳으로 늘었다. 지난해 하루평균 34명이 기증해 총 기증자 수는 10,194명(2003년 9월 기준)이나 된다. 50여개 기업, 공공기관 등의 직장인들이 쓰지 않는 물품을 수집, 매주 토요일 직접 판매하는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에 참여한 숫자도 포함해서다. 이들로부터 모아진 물건을 구매한 사람도 30만 명에 달한다. 이렇게 폭발적인 호응 속에 2천 톤 이상 모인 기증품으로 지난해 1억 5천 6백만 원을 불우이웃에게 전달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가게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은 ‘남이 쓰지 않는 물건’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놓았다는데 있다. 아름다운 가게는 기부를 통해 받은 헌 옷, 물건들을 그냥 내놓지 않고 단계를 거쳐 점검하고 수리해 새것에 못지않은 상태에서 판매한다.
기부, 자선에 의지해 운영되는 비영리단체지만 기업 못지않은 프로정신과 아이디어도 돋보인다. 아름다운 가게가 지난해 11월 잠실 올림픽경기장에서 개최한 벼룩시장에는 20여만 명이 다녀가 성황을 이루는 등 단순히 ‘좋은 일에 동참하자’를 내세우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다.
지역별 매장마다 특색 있는 물건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안국점은 본점인 만큼 3층 매장에 다양한 물품을 갖추는데 주력한다면 8호점 홍대점은 ‘아가홍(아름다운 가게 홍대점)’이라는 별칭으로 문화의 거리 홍대 앞답게 젊은 작가들의 아트상품 등 실험적인 생활문화용품 등을 판다. 이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작품 발표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의 긍정적 효과는 인해 정부차원에서의 나눔시장 장려를 이끌어 냈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전국 지자체가 매달 1회 이상 중고품 시장이나 바자회를 열도록 지원하고, 서울시도 지하철 역 주변에 상설 중고품 시장을 열어 나눔의 장을 확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