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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들었다> 아침형 인간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도 얼굴을 찡그리는 것은 아귀지옥의 문을 여는 일이다. <보살본행경>

‘실미도’와 ‘아침형 인간’. 요즘 가장 많은 관객을 불러들이는 영화와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다. 영화는 ‘웰 메이드’로 매스컴의 상찬을 받고 있고, 책은 ‘웰 빙’과 성공을 얘기한다. 이런 점 말고는 둘 사이의 유사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메시지는 오히려 대척점에 서 있다. 영화는 국가에 의해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 개인의 시각에서 ‘국가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고 있고, 책은 철저하게 ‘개인의,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성공을 속삭인다. 여기서 영화와 책의 접점을 발견한다. 개인!

영화는 ‘호전적 애국주의’라는 최악의 국가주의에 희생된 개인에 대한 진혼곡으로 읽힌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일정 부분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한다.

한편, 영화 속의 개인이 아닌 2004년 지금을 살고 있는 개인은 ‘아침형 인간’에 열광한다. “남보다 앞선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복음을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모든 인간이 아침형 인간이 된다면? 모두 다 피라미드의 꼭지점에 우뚝 서 있을까?

이미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아침형 인간이 존재한다. 새벽 인력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단적인 예다.

경제 규모에 비해 우리 사회는 경쟁 탈락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성공한 아침형 인간도 마음은 편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아침형 인간이기는 힘들다.

탈락자에 대한 배려 없는 성공 신화는 실패한 아침형 인간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아침형 인간’이 파고 있는 함정이 그것이다.

■윤제학(아동문학가 / 본지 논설위원)
2004-01-28 오전 8: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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