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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은 백일법문을 통해 “一日不作 一日不食”을 강조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로 규정되는 백장청규의 정신은 오늘의 의미로 새겨보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수행자의 일체 의례가 그대로 수행이 되게 하여 수행 그 자체가 그대로 삶이 되고, 삶 그대로가 깨어있음이 되는 “수오일여(修悟一如)”의 강조이다. 둘째는 “선농겸수(禪農兼修)”로 불려지는 자급자족의 생산불교 지향이다. 청규정신에 투철한 성철 스님의 선정신을 토대로 오늘의 한국불교가 다음사항을 지향해야 하겠다.
* 선교회통(禪敎會通): 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선은 암증선(暗證禪)이 될 것이며, 선의 실천이 없는 교는 문자법사(文字法師)의 오류에 빠질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선자(禪者)들이 조사선의 효용을 맹신하여 경전을 익히지 않고 교학을 폄하하는 태도가 있다면, 이는 조사선으로 하여금 무지선(無知禪)으로 빠트릴 위험이 있다.
* 계선일치(戒禪一致): 성철선 역시 철저한 지계의 바탕위에서 수행(禪定)과 깨침(智慧)을 강조하고 있다. 윤리적 긴장을 담보하지 않는 수행과 깨달음은 마왕 파순의 가풍이다. 한국선불교에서 가장 시급한 사안이 바로 지계청정의 선풍을 확립하는 것이다.
* 해행상응(解行相應): 현재 한국선의 병폐는 수행과 인격이 일치하지 않고, 깨달음과 실천이 병행하지 않는데 있다. 인격으로 나타나는 수행과 실천행으로 회향되어지는 깨달음, 즉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준칙으로 수증을 점검할 수 밖에 없다.
* 비지쌍운(悲智雙運): 한국불교만큼 선과 교의 교판에 자유롭지 못하고, 이판과 사판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판은 사판의 자비를 인정하고, 사판은 이판의 지혜를 아울러서 이판과 사판이 모순의 대립을 지양하고 비지쌍운의 상생을 실현할 때 이판적 사판, 사판적 이판의 원융살림(認定의 문화)이 이루어질 것이다.
* 돈점겸수(頓漸兼修): 실천수행이 없는 돈점논쟁은 희론에 불과하다.
* 간화정종(看話正宗): 선종사에서 볼 때 마지막 제기된 수행법이 간화선이다. 21세기 정신문화의 대안이 선문화라고 말하고 있고, 간화선이 최상승이라고 한다면 최상승의 가치에 대한 합리적인 선풍을 진작하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