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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교동 부영아파트 301동 000호에는 이같은 문패가 걸려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시가지내 주거공간이지만 이곳은 특별한 천진불(天眞佛)이 모여 사는 장애우 공동생활가정(일명 그룹홈)인 ‘보람있는 집’. 아파트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서자 최용석(25), 김현기(26), 김민수(24), 권미선(24) 등 장애우들이 사회복지법인 ‘보람의 뜨락’ 심영미(48) 이사장과 함께 가위로 종이를 자르며 재활교육을 받고 있다.
“엄마 이거 이렇게 하는 거야?”
“미선이는 잘도 잘랐네.”
일반인에게는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가위질. 그러나 장애우들에게는 근육을 움직이는 일종의 재활 놀이다.
심영미 이사장이 장애우 그룹홈의 문을 연 것은 1999년. 당시만 해도 그룹홈이라는 개념이 생소한데다 아파트에 장애인 주거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심 이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본인 스스로가 선천성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24)을 둔 부모의 입장이었기에 장애우들도 일반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나 또한 정신지체 아들을 둔 부모이기에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나서 언젠가는 어른이 되지만, 정신 지체인들은 신체적으로는 성숙해지는 반면 마음은 언제나 아이로 남습니다. 그들에게도 세상을 함께 사는 즐거움과 보람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결코 혐오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모들과 합심해 처음 그룹 홈을 만든지 이제 5년. 지금은 ‘보람있는 집’과 단기보호시설인 ‘보람의 집’, 주간보호시설인 ‘배움터’, 생산물 판매시설인 ‘강릉공판장’을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우도 4명에서 시작해 현재는 모두 50여명에 가깝다. 앞으로 교동 택지지구에 장애우를 위한 전용 공간을 지어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꿈도 가지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 24시간. 심 이사장은 하루 24시간이 짧기만 하다. 오전 6시 기상해서 복지법인내의 4개 시설을 둘러보고 회장, 사무총장,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강릉정신지체인애호협회, 강릉시장애인연합회, 강릉복지관 등의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녹초가 되지만 그는 자신을 쳐다보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금방 피곤이 녹아 없어진다.
“좋아서 하지 않으면 절대 이일을 하지 못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다른 부모처럼 아들이 장애인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진리임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감사의 결과가 나에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맑아지고 장애우들도 일반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니깐요”
그룹홈, 중ㆍ단기 보호시설 장애우들과 심영미 이사장은 요즘 일요일이 기다려진다. 매주 일요일이면 장보기, 노래방 가기 등 세상속으로 외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다려지는 것은 사찰문화기행. 부정기적으로 강릉 지역 사찰을 단순히 참배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아이들은 자연을 접하고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들이 성공회 재단에서 운영하는 성베드로 학교에 입학할 때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때 불교계에서도 장애우를 위한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마음때문인지 아이들에게 강요는 하지 않지만 가끔 사찰과 유적지로 문화기행을 갑니다. 지난 1월 11일에는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를 다녀왔는데,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 아이들이 절 이야기를 할 정도로 즐거워했습니다.”
법인의 시설 규모가 커지면서 심 이사장은 최근 고민이 생겼다. 재정적인 문제가 바로 그것. 심 이사장은 그동안 그룹홈을 운영하면서 ‘원장’, ‘이사장’ 등의 명함을 가지고 있지만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장애우들을 위해 ‘보람있는 집’ 옆 집 두채를 거액의 자비를 들여 임대했고, 국가 보조금이 있긴 하지만 시설 운영자금도 매년 자비를 들여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가진 것이 많지 않아 더 이상 많은 돈을 기부 할 수는 없지만 그는 장애우들을 돌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늘 행복하다.(농협 172996-55-002382 예금주 보람의 뜨락, 전화 033-647-2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