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관통도로 저지 운동의 중심이었던 수경 스님(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이 이 문제와 관련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비종교적,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며 “심지어 불교계가 또한번 ‘거래’를 했다는 의혹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내부적으로 진실을 요구하지 못하는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밝혔다.
수경 스님은 1월 15일자 한겨레 신문에서 올해 각종 시상식에 등장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과정에서 이렇게 밝히며 “정작 불교계 내부가 막혀 있다. 종단과 종정을 설득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런 독단적 결정이 나온 것이다”라며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수경 스님은 또 “불교는 우리 사회 ‘구조조정 1순위 대상’이 돼버렸다”며 “동양 최대의 불상이니, 팔만대장경 동판색인이니, 그런 호화로운 불사는 부처의 참뜻이 아니다. 더구나 불자들의 순수한 십시일반 정성으로 이뤄야 할 부처의 뜻을 국가 예산 지원이나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수경 스님은 불교계 내부에 대해서도 “절집의 살림을 경제논리나 물량주의로 운영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며 “고급 승용차를 타고 국립공원 생태계 파괴에 앞장서고, 문화재 관람료 수입에 연연하는 사찰 수행환경의 내적 빈곤이 외적으로 드러나 중생들에게 ‘감화’는커녕 피해를 주고 있다. 참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기사 전문.
“사패산터널 타협눈총 부끄러울 뿐”
새해를 맞아 새롭고, 더 나은 변화에 대한 기대가 높다. 특히 새만금을 비롯해 첨예한 사회적 현안으로 ‘2003년의 10대 뉴스’를 채웠던 환경문제들은 4월 총선정국과 맞물려 새로운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법장 조계종 종정의 전격적 ‘담판’으로 공사가 재개된 사패산 터널건설사업, 핵전문가를 비롯한 서울대 교수들의 핵폐기물처분장 관악캠퍼스 유치 제안,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새만금간척사업과 천성산 도룡뇽 소송 등등 사안마다 만만찮은 진통과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이 모든 갈등의 한가운데 수경 스님이 있다. 지난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온몸으로 ‘생명평화운동’에 나섰던 스님은 여전히 묵은 현안들을 풀어낼 상생의 해법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기도수행으로 지난해 연말 환경상을 독차지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민운동가들이 ‘이 시대 최고의 시민운동가’로 문규현 신부와 나란히 뽑은 것을 비롯해 환경운동연합 환경기자클럽 환경과공해연구회 등의 ‘올해의 환경인’으로 꼽혔다. 정작 시상식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는데.
=무슨 상을 받았는지 잘 모른다.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일개 수행자로서 솔직히 부담스럽다. 오직 실천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드러낼 게 없다. 지나치게 부풀려 지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오히려 괴롭다.
―구체적 연유를 물어도 좋은가.
=결국은 사패산 터널이 뚫리고 있다. 서울의 허파인 북한산국립공원을 우리 스스로 파괴해 대대로 그 짐을 지우게 됐다. 지난 3년 동안의 고민과 희생을 일순간에 무위로 돌려버린 ‘비종교적,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 심지어 불교계가 또한번 ‘거래’를 했다는 의혹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내부적으로 진실을 요구하지 못하는 현실이 고통스럽다. 한마디로 부끄럽다.
―지난해 6월초 새만금 삼보일배를 마친 이후 시위나 투쟁보다는 주민과 정부, 환경단체 간에 합리적 논의의 틀을 끌어내려 동분서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패산 문제도 포함돼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불교를 비롯한 종교계는 갈등을 유발하기보다는 푸는 구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모두 구성원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모순이다. 나부터 삶의 내용이 바뀌지 않으면, 물량주의 인간중심에서 무욕주의 생명존중으로 바뀌지 않으면 근본적 해결은 없다. 그런데 정작 불교계 내부가 막혀 있다. 종단과 종정을 설득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런 독단적 결정이 나온 것이다.
―2002년 3월부터 6개월 동안 직접 현판을 걸고 농성을 했던 ‘철마선원’이 지난해 성탄절날 철거됐다. 당시 철거를 지휘한 보성 스님은 “대안과 행동없는 환경운동은 실패”라고 주장했는데, 불교계 내부의 공론인가.
=전혀 합의되지 않은 개인적 견해다. 지난해 8월14일 정부·시공사·시민단체·불교계가 연말까지 노선재검토에 합의한 데 따라 선원을 비웠는데, 그가 임의로 다시 들어간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대표성도 전혀 없는 인물의 입을 빌려 환경·시민단체를 ‘국책사업 발목잡아 혈세를 낭비시키는 세력’으로 매도까지 해 마음이 무겁다. 불교계의 치부 탓에 단체들의 환경보호 소명을 왜곡하고 국민에게 좌절과 절망을 준 것 같아 죄송스러울 뿐이다.
―종단 갈등이나 폭력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민주화 과정 속에서 불교가 ‘개혁의 성역’으로 남아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유가 무엇이고 대안은 없는가.
=불교는 우리 사회 ‘구조조정 1순위 대상’이 돼버렸다. 일제 이래 곪아온 내부 모순을 정화하지 못한 까닭이다. 부처의 가풍을 제대로 익히고 대중공사를 민주적이고 개방적으로 운영함으로써 단절, 청산해야 한다. 종교가 성역이 되는 순간 존재 의미도 없어진다. 우선 종단 보직승려들의 각성이 절실하다.
불교 내부 언로 막혀 ‘관통로 거래의혹’자초
대형불사보단 수행환경 개선·생태적 삶 중요
‘자비의 손’이젠 실업·외국인노동자 감쌀 때
―이 시대 종교의 진정한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종교는 삶의 자양분이자 마지막 울타리가 돼야 한다. 일체 중생의 고통과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해 부처와 예수가 늘 지금 우리 곁에 있다는 시각에서 서로 상처 입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당장 실직과 파산의 고통을 못 이겨 자살하는 서민들, 길거리에서 절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가족도 공동체도 국가도 의지할 수 없게 된 이들에게 종교마저 외면해서는 안된다.
―가장 시급한 내부 개혁과제는 무엇인가.
=‘소욕지정 정신’, 수행의 근간인 청빈으로 돌아가야 한다. 동양 최대의 불상이니, 팔만대장경 동판색인이니, 그런 호화로운 불사는 부처의 참뜻이 아니다. 더구나 불자들의 순수한 십시일반 정성으로 이뤄야 할 부처의 뜻을 국가 예산 지원이나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수행환경 정화도 시급하다. 생명존중과 생태적 삶은 불자의 일상 그 자체다. 오직 실천함으로써 중생과 사회에 자연스럽게 회향되도록 해야 한다. 절집의 살림을 경제논리나 물량주의로 운영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국립공원 생태계 파괴에 앞장서고, 문화재 관람료 수입에 연연하는 사찰 수행환경의 내적 빈곤이 외적으로 드러나 중생들에게 ‘감화’는커녕 피해를 주고 있다. 참회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환경정책이 낙제점 평가를 받고 있다. 상대적 실망이 큰 만큼 비판여론도 고조되고 있다.
=무엇보다 환경문제는 획기적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단체들의 순수한 목적을 이해하고 귀를 열어야 한다. 당장 모든 국책사업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희망’은 제시해줘야 한다. 무시하고 반감을 사게 하는 것은 어리석다. 핵폐기장 문제는 앞으로 100년을 먹고 살 채비로서 국가 에너지 정책 전환의 틀에서 논의하면 자연스럽게 해법이 나올 것이다. 환경부를 부총리급으로 승격시켜 힘을 실어줘야 ‘개발과 보전의 균형’이 가능하다. 관료의 벽, 기득권층의 저항이 완강하지만 대세가 바뀌는 전환기의 혼돈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끌고 가야 한다.
―갑신년 새해 새로운 계획과 다짐이 있다면.
=환경운동에 나선 이래 ‘제 일로 못하면서 왜 다른 일에 나서냐’는 한 네티즌의 지적이 늘 머리 속에 남아 있다. ‘마음보’를 바꿔야 내 삶도 사회도 달라진다. 행복은 조화 속에 있다. 서로 기대면서 사는 정신, 불교를 보편적 언어로 풀어서 공동체를 살리는 데 힘을 보태려 한다. 2월2일 세계 습지의 날을 맞아 유럽으로 ‘새만금개펄살리기 국제 삼보일배 순례’를 하러 간다. 이어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도법 스님과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떠난다. 기약없이 산하를 걸으며 중생의 삶과 산하의 애환을 살펴 생명과 평화로 서로 소통하길 기도해 맑은 기운을 퍼뜨리고자 한다. 부뚜막 흙을 바를 때도 하루 전에 땅을 두드려 미리 생명을 지닌 것들이 피하도록 했던 선인들의 일상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예의이자 자비였다. 미신이 아니다. ‘동체대비’, 생명운동의 바탕에서는 모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