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계율을 깨뜨리어 지키지 않음’ ‘환속-다시 속인으로 돌아옴’
이 두 단어는 수행자에게 있어 결코 자랑스럽거나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환속’은 곧 ‘궤도이탈’이자 ‘실패’로 여기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수행자를 만나면 그가 ‘왜 출가했는지’를 궁금해 하고, 환속한 이의 사연은 더욱 궁금해 한다.
16년간의 비구 생활을 접고 컴퓨터 수리공이 된 정연(가명) 스님. 명예에 대한 끝없는 욕심을 직시한 후 미련없이 승복을 벗은 그는 “옷을 벗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모르고 지은 업이 얼마나 많겠냐”고 말한다. “마음은 편하게, 밥은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일은 열심히” 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나를 키워주고 공부시켜준 종단의 컴퓨터를 무료로 수리하고 인터넷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처럼 <환속>은 전에 성직자로 살았지만 지금은 일상인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어린 나이에 언니를 따라 들어간 수녀원이 결코 환상의 도피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22년 만에 세상으로 돌아온 카타리나 수녀님, 야학에서 가르치던 아이들에게 혈육보다 더욱 진한 모정을 느끼고 이들의 엄마가 되기 위해 환속한 효인 스님, 한 여자를 사랑해 사제복을 벗었지만 그녀에게서 ‘옛날의 바오로 신부님을 사랑했지 지금의 당신을 사랑한 적 없다’는 말을 듣고 방황했던 바오로 신부님, 자신의 지병이 다른 수도자에게 폐가 될까봐 수도원을 나왔지만 노숙자들을 돌보는 등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스테파노 수사님 등 5명의 사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지은이가 1999년부터 5년간 취재해 90분짜리 테이프 36개에 수록한 열 분 가운데 다섯 분의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은이는, 성직의 길을 택할 때만큼 많은 고뇌를 필요로 하는 ‘환속’을 결코 중도하차나 인생의 낙오로 바라보지 않는다. 진정 자기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용기 있는 결정이며, ‘어디에 있느냐’ 보다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계기라고 말한다.
“가정도 작은 절 아닙니까? 지금은 이 작은 대중 공동체에 충실해야지요. 식구들이 나의 도반이 된 셈입니다”(정연 스님), “나 같은 사람에게 출구는 반드시 수도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땀을 흘려야 하는 농사일, 그 자체가 수도 아닐까요?”(카타리나 수녀), “좋은 말은 크고 푸짐하게, 안 좋은 말은 작게 하지요.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저 용서하면 되더라구요”(효인 스님) 등 이들의 깨달음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자신이 믿고 따르는 분의 말씀에 충실하다면 그 사람이 바로 진정한 신앙인이자 수도자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