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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 한국 초상화 36점과 중국 명·청대 관료들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 56점, 일본 후쿠오사키박물관 등이 소장한 초상화 10점 중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단연 국보 240호 윤두서(1668~1715) 자화상. 눈꼬리를 매섭게 치켜 올리고 흑백이 분명한 광채 서린 눈빛은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킨다.
또한 미간의 살짝 표시되어 있는 안경자국과 좌우로 힘차게 뻗은 수염은 ‘터럭 한 올이라도 다르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당시대(조선)의 사실주의적 초상화 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대조적 기법을 사용해 인물의 내외적으로 상호대립적인 요소를 병존시켰다.
옛 선조들에게 초상화는 인물을 화폭에 담아 실물과 같이 소중히 다루는 그림이었다. 또한 조상숭배의식을 위한 그림이었기에 서민보다는 제왕이나 성현, 충신, 효부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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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보물 594호 ‘최덕지 초상’ 과 ‘주도복 상’ 중국 고대부터 명대까지 위인 220명과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시습 4명의 한국인물을 담은 ‘역대도상화첩’ 등이 선보인다.
한국과 일본의 승상을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초의선사 초상’과 지공·나옹·무학 화상의 ‘삼화상 진영’ 직지사의 ‘조사탱’ 등 조선시대의 승상이 바로 그것.
삼국시대에 불교의 전래되면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승상은 억불숭유 정책을 피던 조선조 때에도 성행했다. 그러나 대부분 화폭 하나에 한 인물만 그릴 뿐 군상형식으로 그려진 것은 대흥사와 직지사의 ‘조사탱’ 몇 점에 불과해 이번에 전시된 조사탱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조사탱은 사찰의 계보와 역사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제작되었으며, 취세나 의복, 얼굴형용 등은 일괄적인 특징을 보인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떨까? 일본 초상화는 기하학적이다. 중국이나 한국 초상화와는 달리 인물의 기질과 신분을 표현하기 위해 변형과 과장법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의 선종(禪宗)은 무사 계급의 후원을 받아 성행했기에 친조(頂相)라고 불리는 승상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친조로써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도와 승리를 이끈 ‘도보쿠거사상’과 일본 진언종(眞言宗)의 개조인 ‘구카이상’ 등이 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원효 스님과 의상 스님의 이야기를 다룬 화첩 ‘화엄종조사회권’도 흥미롭다.
동국대 미술사학과 정우택 교수는 “일본 국보로 지정된 화엄종조사회권은 의상 대사의 부석사 창건 설화 및 선묘공주와의 만남, 원효 대사의 당나라 유학길의 해골사건 등이 총6권으로 그려진 두루마리형식의 그림”이라며 “일본에서 제작되었으나 인물, 복식 등에서 중국회화 표현이 선보여 고려시대의 회화경향을 짐작케 해주는 귀중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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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초상화는 한마디로 현란하다. 인물뿐 아니라 그가 입고 있는 옷과 장신구, 배경에 놓인 가구까지 섬세하고 화려하게 묘사돼 있다. 이런 표현기법은 인물의 신분이나 지위, 개인적 기호 등을 그림에 투영시키기 위해 사용됐다.
특히 ‘왕씨선세초상’은 남자 7명, 여자 8명의 초상을 군상으로 그린 작품으로 지문공(志文公) 왕부무(汪敷武)의 진용(眞容)에 대한 찬문과 삼대에 걸친 가계에 대해 논하고 있는 제발이 적혀져 있다. 인물들은 얼굴의 굴곡과 주름을 선묘로 표현하고 명암으로 미화시켰으며, 의복 역시 주름선을 뚜렷히 표시한 점이 특징이다. 이밖에 중국 청대의 ‘정정공 초상’과 ‘문인초상화첩’ 등의 작품들과 분묘에서 출토된 원·명대의 중국 복식 19점이 전시된다. (02)730-49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