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에서 ‘나누며 하나되기’ 운동을 시작하여, 통일, 환경 등 우리 현실에서 가장 시급하고도 절실한 분야들에 대하여 활동하기로 하였다 한다. 얼핏 생각하면 우리 불자들의 귀에 이미 익숙한 ‘불교의 사회화’와 같은 맥락으로 여겨질 수 있고, 실제로 그 근본 정신에서야 다를 것이 없겠다. 그러나 이번 천태종의 움직임에는 ‘불교의 사회화’를 지향하는 과정에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주목해야 할 요소들이 있다.
우선 그 구호인 ‘나누며 하나되기’라는 말이 갖는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불교의 사회화는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동체대비’(同體大悲) 정신을 바탕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천태종의 구호는 우선 중생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나의 소유를 중생과 나누는 그러한 자비행을 통해 중생과 하나됨을 실현하겠다는 정신이 드러나 있다. 나눔의 실천을 통해 중생과 하나됨은 바로 자비행을 통해 하나됨의 큰 깨달음을 성취하는 길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각 분야를 나누고 그 분야에서 전문적인 수준의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는 점이다. 요즘 불교계 NGO 등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고, 높은 수준의 활동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식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방향설정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누는 일은 그저 생색내기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극도로 분화되고 또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현대 사회, 그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은 전문가를 요구한다. 천태종의 ‘나누며 하나되기’ 운동의 방식은 이러한 올바른 방향성을 찾은 것이다.
나의 소유를 중생과 함께 하는 일, 중생의 괴로움은 나누어 함께 지는 일, 이것은 불교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이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은 또한 수많은 중생을 불교 속으로 이끄는 최고의 포교수단이다. ‘불교의 사회화’를 통해 이러한 부끄러운 세월을 청산하는 데 온 불교계가 힘을 기울이고 있는 이 시점에 천태종의 ‘나누며 하나되기’가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성태용(건국대 교수 /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