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에서 풀이 자란다. 노천의 마애불이나 석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온 몸에 짙푸른 이끼를 법의(法衣)처럼 입고 있는 불상은 천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인간의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석탑이나 불상에게도 자신의 살을 파고드는 식물의 뿌리가 세월의 권위를 대변하는 법의처럼 느껴질까?
□ 탑신에 이끼·나무 서식 ‘위험천만’
지난 한해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의 연구 결과를 담은 <보존과학연구 24>에 실린 10개의 보고서 가운데 4개가 석조문화재의 생물학적 손상에 관한 것. 그만큼 생물에 의한 석조문화재의 피해는 심각하다.
석탑이나 석불에 손상을 주는 생물에는 이끼류 외에도 미생물인 박테리아, 곰팡이, 조류(藻類), 지의류(地衣類), 고등 식물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들 식물은 석조문화재 표면을 오염시키고, 석재표면의 갈라진 틈을 따라 내려간 뿌리는 석조물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물리적 손상을 입힌다. 또 식물이 성장하는 동안 분비하는 산성 물질은 화학적 손상을 입히게 된다. 이러한 생물·환경적 피해가 결합하면, 석조문화재가 갈라지거나 일부가 탈락하는 등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도 있다.
실례로 2002년 경북지역 석조문화재 보존상태 조사에서는 영주시 가흥리마애삼존불상(보물 제221호)은 지의류가 성장하면서 전체적으로 검게 변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또 칠곡군의 송림사 5층전탑(보물 제189호) 옥개부에서는 목본식물인 아카시나무가 자생하고, 영양군 현일동 삼층석탑(보물 제610호)은 지대석이 토양에 덮여 균열된 기단부 위에 초본류가 성장하고 있었다.
□ 주기적인 청소·관리·모니터링 등 필요
이 같은 생물 피해를 방지하는 처리는 크게 석조물 표면을 생물체가 좋아하지 않는 환경조건으로 변화시켜 생물체의 발생을 방지하는 방제법과 생물체를 직접 제거하는 보존처리 방법으로 나뉜다.
방제법에는 주기적인 관리와 청소, 발수제·경화제(실리콘, 아크릴, 에폭시 수지 등) 처리가, 보존처리에는 기계적인 세척, 살균·살초제(살생물제, AC322, K201, Algikiller, Koretrel, Protoalgen, benzalkonium chloride 등) 방제 방법이 있다. 연곡사 동부도(국보 제53호),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등은 이미 약제를 사용한 보존처리 과정을 거쳤고, 현재 중원 미륵리 석불 입상에도 살생물제를 처리해 상태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존처리 보다 주기적인 청소나 관리, 모니터링을 통한 예방적인 보존방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보존처리는 석제표면에 손상을 줄 수 있고, 완전한 방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석조문화재복원팀장 김사덕 연구원은 “문화재의 여건에 따라 기계적 방법, 화학 약품 사용 방법 등 적용되는 처리법이 다르지만, 통풍·배수·수목제거 등 환경적인 제어와 함께 이뤄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실험 사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1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 공사에서도 생물 침해 방지를 위한 실험이 진행된 바 있다. 해체한 미륵사지 석탑의 2000여개 부재는 생물피복 비율이 85%에 달했다. 이 가운데 상단부 3개 부재를 각각 세 부분으로 구분해 증류수와 플라스틱 솔을 이용한 단순세척, K201약제(1/5 희석제, 1/3 희석제 처리)에 의한 세척, 무(無) 세척하는 실험을 거쳤다. 그 결과 단순세척은 암석의 상태가 양호하며 물리적인 작용으로 인한 암석의 훼손이 극히 적으나, 처리 4주 후 상당수의 생물체가 재발생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약제 처리 방법의 경우 농도에 따라 재발생 효과가 달라져, 생물훼손이 심한 경우에는 1/5 이상의 희석제가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