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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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위할 수 있음이 살아가는 樂이죠"
조계종 중앙신도회 불교환경연대의 특별한 새해맞이
지난해 12월 30일 의정부 통일안국사 선재동자원을 찾은 조계종 중앙신도회 불교환경연대 사무처 직원들. 사진=박재완 기자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어쩌면 저마다의 ‘앨범’ 하나씩을 감춰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앨범을 꺼내드는 건 십중팔구 ‘좋았던 옛날’에 대한 향수 탓이지만, 붙잡고 싶은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펼쳐든 경우도 마찬가지다. 앨범 속 사진 한 장에 텅 빈 가슴은 채워지고, 시린 마음은 훈훈해진다.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불교환경연대 사무처 직원들은 지난 해 12월 30일 아주 특별한 앨범 하나씩을 만들었다. ‘새해맞이 해돋이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은 어디어디’라며 세상이 온통 들떠 있을 때였다. 이들 17명은 의정부시 호원동에 자리한 통일안국사(주지 지산 스님) 부설 선재동자원을 찾아 새해 맞을 채비를 했다. 선재동자원은 갈 곳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아이들 74명이 모여 사는 비인가 아동복지시설이다.

사진=박재완 기자
“그래도 아이들이 지낼 새 건물이라도 생겨서 다행이에요. 작년에 올 때는 조립식 가건물 4동밖에 없었는데, 아예 몰랐더라면 싶었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거든요.” 주지 지산 스님의 안내로 20여 일 전 새로 입주한 3층짜리 콘크리트 숙소 건물을 둘러보며 일행이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한 20일 됐나. 아직 안에는 손 볼 데가 많은데 날씨가 추워져서 먼저 옮겼어.” 아이들 숙소로 쓰이던 조립식 가건물 4개 동 가운데 지난 여름 화재로 2동이 전소된 이후 아이들은 천막생활을 해왔다. 봄부터 짓기 시작한 3층 콘크리트 숙소 공사도 ‘돈이 없어’ 중단한 때였다. 지산 스님은 은행 빚 내서 건물 먼저 지었다고 했다. “그래도 마음은 놓인다”는 일행의 말에 스님은 “은행 이자며 운영비며 후원금으로 다 해결해야 되는데, 후원금도 갈수록 줄고…”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자, 이제 일해야죠.” 숙소를 둘러보자마자 이상근 총무부장(중앙신도회)이 서두른다. “작년에는 거의 놀다갔거든요. 애들이랑 공차다 보니….”

사진=박재완 기자
이 날은 마침 아이들이 머리 깎는 날이었다. 여자아이들 숙소였다 지금은 공부방으로 쓰고 있는 가건물에서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미용실을 하는 김하매씨가 쉬는 날을 택해 딸과 함께 아이들 머리를 깎아주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라도 감겨줘야지” 하는 일행들의 바람(?)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역시 자원봉사로 나온 학생들이 이미 선점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준비해온 호떡과 초코파이 등 먹을 것을 나눠주고 같이 놀아주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던 박태훈(중앙신도회 정보화사업팀)씨는 “1년에 한 번 왔다가는 거라 솔직히 죄송하다”고 했다. “그래도 한 번 오고 나면 생각이 많이 나요. 텔레비전에 비슷한 처지의 애들 얘기가 나올 때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이 가게 되고, 적게나마 성금도 내게 되거든요. 봉사를 자주 다니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히 추천도 해 주게 되고요.”

사진=박재완 기자
이상근 부장은 “송년회 대신 어려운 아이들을 찾아 봉사 활동한 게 올해로 3년째거든요. 첫해엔 둥지소년의 집에 갔었고 작년부터 여기 왔는데, 아이들 얼굴을 보고 나면 다짐이 많이 됩니다. 1년을 뒤돌아보고 반성도 하게 되고 새해엔 우리 이웃, 우리 사회를 위해 좀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새롭게 하게 되고…”라고 말했다. 한 아이가 다가와 “오줌 마려워요”라고 말하자 이 부장은 “가자”라며 얼른 자리를 떴다.

새 숙소로 발길을 옮기자 청소하는 일행들 틈 속에서 김희경(불교환경연대 자원봉사자)씨가 네 살배기 지훈이랑 한창 장난을 치고 있다. “처음 여기 올 때는 몸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요 녀석 생각이 많이 나요. 부처님오신날 행사 때 텔레비전에 나오는 동자승들을 보면서도 마음은 이쪽으로 향하더군요.” 어느 새 졸고 있는 지훈이를 품에 안은 김 씨는 “작년에 올 때는 60명이 조금 넘었던 것 같은데 아이들이 많이 늘었다”며 “이제 연말연시에 먹고 마시는 것은 할 만큼 해봤잖아요. 말로만 이웃을 생각하자고 할 게 아니라 모두가 다 나라는 것을 마음으로, 몸으로 느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박재완 기자
최경애 국장(불교환경연대)은 “한 달에 한번씩들 오자고 했는데, 큰 도움은 주지 못하는 것 같아 늘 미안하다”며 “어쩌면 우리가 위로받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이렇게 잠깐, 한 번 다녀가고 나서는 그래도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자만심을 가지는 건 아닌지, 아이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 인사치레는 아닌지…. 많은 생각들이 스쳐간다”며 “4개월 된 어린 아이까지 내 자식인양 책임지려는 지산 스님처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통일안국사 부설 선재동자원은…?

의정부시 호원동에 위치한 비인가 아동복지시설. 90년 3월, 통일안국사 주지 지산 스님이 갈 데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시작했다. 현재 영ㆍ유아 20명, 초등학생 22명, 중학생 16명, 고등학생 5명, 대학생 1명 등 모두 74명이 살고 있다.

박현규 사무장은 “올해만 10명 정도 새로 들어왔다”며 “경기가 안 좋으면 기하급수적으로 아이들 숫자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은행 빚을 끌어다 3층 건물을 먼저 지은 건, 지난해 여름 화재로 가건물 4동 중 2동이 전소돼 아이들 잘 곳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부 인가(2005년 7월까지 받아야 함)를 받기 위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비인가 시설이라 정부 보조금 한 푼 받지 못한다. 그러나 후원금만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처지에 정부 인가를 받기 위한 시설, 인력 등을 맞추기 위한 재정 마련 역시 캄캄하기만 하다.

지산 스님은 “인가시설에는 18세가 넘으면 나가야 되는데 여기 떠나면 또 어디로 가겠느냐”며 “제 인생 책임져서 나갈 때까지는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되는데, 그것도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031)855-2235
권형진 기자 | jinny@buddhapia.com
2004-01-05 오전 8: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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