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복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비구니 스님’이다.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는 어김없이 비구니 스님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각박한 세상 속 고통과 슬픔을 회색 가사로 감싸 안으며 넉넉한 웃음을 짓는 이들.
“한쪽이 외롭고 소외된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의 외침이 소박한 행복으로 내려앉는다. 새해에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일곱 스님의 대답은 이랬다.
▲종합복지관 속 어린이복지 - 상덕, 선재 스님
부처님의 자비를 말이 아닌 실천으로, 느낌과 감동으로 전하고 싶은 마음에 복지사업에 뛰어 들었다는 상덕 스님. 6년 전 옥수종합사회복지관 맡았을 때만해도 다른 복지관을 따라 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1~2년이 흘렀을까? 상덕 스님은 고민에 빠졌다. 지역민들이 무엇을 원할까. 꼭 필요한데 지원되지 않는 프로그램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러던 중 아이들을 만났다. 팔짝 뛰어다니며 장난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아이들이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해 정신지체와 언어발달 장애 등을 겪는 것을 보았다.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놀이치료실을 열었다. 전문상담사들을 초빙해 어린이치료교육 시키기를 3~4년, 얼마 전 치료상담실과 언어치료실, 놀이치료실 등으로 세분화시켰다.
요즘은 참 기쁘다. 성과보다는 아들, 딸 없는 어르신들이 복지관을 찾아 아이들을 보살피고 정을 나누는 모습이 훈훈하게 다가왔다.
올해에는 학교 내 사회사무실의 역할을 강화해 금연교실과 왕따방지 등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더욱 관심을 가질 계획이다.
삼전종합사회복지관의 선재 스님은 ‘자비복지’를 실천덕목으로 삼고 있다. 복지관의 특성화 사업으로 인근 지역 중·고등학교, 대학들과 연계해 학교사회사업을 펼치면서 ‘성 안내는 얼굴, 웃는 얼굴이 곧 공양이다’는 말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소년소녀 가장들 그리고 결식아동들에게는 물리적인 지원보다 세심한 관심과 사랑이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 도서관을 열고 장애아동들을 위한 언어·심리·놀이·미술 교육 등을 진행했다.
필요하면 학교에 사회복지사를 보내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아이들을 많이 보듬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다가가면 된다’는 생각에 선재 스님은 오늘도 먼저 씨익~ 웃으며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아이들은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다. 다소 시간이 걸린 뿐 언제나 그 천연의 순수함으로 화답해온다.
▲ 중증환자 및 장애인 복지 - 능행, 성언, 지웅 스님
능행 스님과 지웅 스님, 성언 스님에게는 쏟아지는 질문이 많다. 복지 중에서도 가장 손이 많이 가고 힘들다는 중증환자와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냥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입니다.”
암 말기환자를 비롯한 중증노인환자들을 10여년째 보살피고 있는 정토마을의 능행 스님에게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인간은 죽음 직전에 놓일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 당사자 뿐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가족들의 고통 또한 말로 헤아릴 수 없다. 그들이 죽음 앞에 허겁지겁 내몰리지 않고 영원히 고통스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극락세계로 인도하고 싶다. 이것이 사람의 도리이자, 이유라면 이유란다.
간혹 시신을 누여놓고 기뻐할 때도 많다. 고통 없이 편안하게 잠든 모습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잠시 그간의 고달픔을 위로받는다.
아침에 한 어르신이 다가와 한 마디를 능행 스님에게 건냈다. 칠십 평생을 살면서 처음 이곳에서 사람사는 맛을 느꼈노라고. 눈물이 많은 곳은 그만큼 기쁨이 찾아 올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둔다. 여건만 허락된다면 더 많은 분들을 모시고 싶다.
제천장애인복지관의 성언 스님은 요즘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새해에 복지관 이전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실, 목욕탕, 무료급식소, 치료실 등 기본시설도 확충시키고 조금 더 다양한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벌써부터 머릿속에 장애인들의 웃는 얼굴이 가득하다. 성언 스님은 일반인들이 장애인들을 평범하게 봐주기를 바란다. 장애는 누구나 갖고 있는 결점 같은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스님은 장애인 고용문제에 민감하다. 의무 고용 조항 때문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삶을 진정 생각하고 미래를 열어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고 싶다.
상락원의 지웅 스님은 아이들 뒷바라지에 바쁘다. 봄이 되면 6명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4명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진학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만큼 신경 쓸 곳도 챙겨야 할 것들도 많다. 게다가 날이 따뜻해지면 아이들 집 방수공사와 담장 공사 등도 시작할 계획이다. 부족한 것이 많지만, 항상 믿고 따라주는 아이들이 있기에 힘이 솟는다. 지웅 스님은 간혹 보살님들이 아이들을 찾아와 “아이구. 업이야 업.”하고 한탄할 때마다 속상하다. 특별한 사람은 없다. 장애아들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의 자식인건 장애아들도 똑같다.
▲ 노인 복지 - 지완, 탄하 스님
지완 스님은 항상 강조한다. 몸이 늙었다고 마음까지 늙는 것은 아니라고.
그래서 서울노인복지센터에는 어르신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노인 성문화 캠페인부터 환경·문화재 지킴이, 노인 직업 전문학교에 이르기까지. 지완 스님은 늘 어르신들이 사회에서 제 위치와 본연의 역할을 되찾고 풍부한 경험과 지식자원들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복지관이 담당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이지만, 어르신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것만으로도 삶의 큰 희망을 안겨드리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기성에 그치지 않는 어르신들의 지속적인 사회참여를 위해 다양한 직업훈련 프로그램과 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리고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를 걸 잊지 않는다. “어르신들. 힘내세요.”
탄하 스님은 복지관이 농촌지역에 위치해 있는 만큼 직거래 장터 알선과 가정봉사 서비스에 매진하고 있다. 농사를 짓느라 몸이 불편한 분들, 한참 일할 젊은이들이 떠난 시골마을에서 어르신들의 텅 빈 마음을 채워주고 싶기 때문이다. 도시만큼 체계적이고 알찬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는 없지만, 같이 호미질하고 파스를 붙여주며 나누는 정도 크다고 믿는다. 소박하다고 소홀한 것이 아니다.
지완, 탄하 스님들뿐만 아니라 복지불사에 앞장서고 있는 비구니 스님들은 척박한 복지환경과 재정지원 부족을 어려움으로 토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이다. 너와 내가 하나이고 생이라는 굴레 속에 함께 돌아간다는 생각. 한번 더 이웃을 돌아 볼 수 있는 마음. 그게 봉사의 시작이며, 복지 즉 정토의 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