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2천 5백년 동안 인류의 문화와 역사 창조를 주도해 온 원동력의 하나인 불교.
‘세계화’, ‘정보화’로 대변되는 21세기에 ‘불교가 인류를 위해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전 불교도에게 던져진 중요한 화두다.
끊이지 않는 종교전쟁과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인터넷의 폐해, 물질만능주의의 만연에 따른 종교성 상실과 종교의 상품화 등 불교가 직면할 문제점들과 더불어 불교는 미래사회의 변화된 환경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아본다.
미래학자들은 미래사회의 반작용으로 현재보다 더 심각한 생명의 물질화와 생태계의 파괴, 공해로 인한 질병 증가, 그리고 세속적 가치관의 팽배로 인한 지적 혼돈과 청정한 정신문명의 파괴를 꼽는다. 실제로 오늘날의 지구촌은 이러한 부작용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으며, 특히 정신적 가치관의 혼돈은 물질문명의 폐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인간성의 부재 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래사회에서는 종교의 역할이 더욱 강조될 것이 확실시 된다.
그렇다면 불교는 21세기에 있어서 과연 삶의 궁극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서 불교학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권기종 교수(동국대 불교학과)는 “시대가 달라졌다 해서 종교의 본질이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한다 하더라도 삶의 근원적인 문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 교수는 오히려 종교는 종교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불교가 상품화되고, 성스러워야 할 성전(聖殿)에서 시장의 논리가 야기되고, 성직이 세속적 직업으로 전락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불교와 불교인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 급선무다. 이는 곧 불교인들이 부처님의 참 가르침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박광준 교수(신라대 사회복지학과)는 “지식사회 그리고 진정한 물질의 시대라고 하는 미래사회의 두 가지 특징은 그 각각에 대응해야 하는 불교실천방향을 제시해준다”고 말한다. 곧 그 하나는 불교활동의 전문성을 제고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물질을 소중히 다루고 아끼는 불교적인 생활양식이 보다 많이 보다 빠른 속도로 국민들 사이에 보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가 불교다워지기 위해서는 오늘날 불교에 내재하고 있는 비불교적 요소를 불식하고 근본불교가 간직한 인간존엄, 평등, 개혁의식 등 본연의 선명한 불교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곧 미래사회에 있어 불교가 종교의 중심이 되는 길이며, 21세기의 보편적 세계종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길이다.
끊이지 않는 종교갈등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다종교 시대에 살고 있다. 이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는 종교의 사상적 편견으로 인한 아집과 독단이 심화되어 종교간의 갈등이 초래되기 쉽다. 지난 역사 속에서 종교가 있는 곳에 대립이 함께 했으며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살육이 자행되기도 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세계의 35개 지역에서 분쟁이 지속되는 등 종교간의 마찰과 대립은 그치지 않고 있다. 9.11 테러에 연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종교간 불신과 국가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종교가 인간 삶의 지혜나 기반을 제공해주기는커녕 대립과 투쟁의 원인이 될 수도 있으며, 이로 인한 일반인들의 종교에 대한 회의감도 증가될 수밖에 없다.
종교를 둘러싼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종교에 대한 열린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종교간의 배타적 대립과 미움을 종식시키고 대화의 원리와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자신의 교단이 얼마나 독자성을 가지고 그 가르침을 넓혀갈 수 있을지를 탐색해야 할 것이다. 역사상 ‘비폭력과 무저항’을 실천해 온 불교가 종교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의 처방을 내릴 수 있기 위해서는 종교분쟁에 대한 연구와 적극적인 중재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인터넷, 불법의 파괴자인가
인터넷은 이제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다가오는 새 시대에는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들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새롭게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한 포교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예측하기도 하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매개로 한 재가자들의 신행활동의 다양화를 가져오게 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에 따른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인터넷이 종교에서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반생명적인 정보를 유통시키는 장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이버 신종교의 양산도 우려된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최종석 교수는 “인터넷 상의 사이버세상은 앞으로 사이버종교를 양산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실에서 소외되고 현실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하나의 도피처나 구원처로 익명의 사이버세계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찾으려 할 것이고, 이에 부응하는 사이버종교가 대두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서 “불교는 포교의 문제를 넘어서 미래의 사이버상의 종교문화를 선도해 나갈 준비를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도전…종교 상품화
자본주의는 종교수행에 접근하는 방식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로 성장한 우리는 종교를 ‘소비’하려는 인식 또한 성장했다. 종교전통이 소비자의 상품이 되는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제자이자 스라바스티 사원의 설립자인 둡텐 최된은 “가장 적게 지불하고 가장 많이 가지려 하는 우리의 소비성향이 그대로 종교수행에도 드러나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가장 수승하게 깨달은 스승과 가르침을 구매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싫증이 나면 곧 색다른 수행법을 찾아 나서게 된다”고 말한다.
중앙승가대 불교사회과학연구소 박수호 선임연구원은 불교계의 외적 환경변화로 종교의 시장화와 종교 컨텐츠의 상품화를 지적한다. 여러 종교 중에서 하나의 종교를 선택하는 것이 ‘종교의 시장화’라고 한다면, ‘종교 컨텐츠의 상품화’란 여러 종교의 컨텐츠들 중에서 자신의 기호에 맞는 내용들을 끌어 모아 자신만의 종교생활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에 대한 욕구가 최고조에 달한 요즘, 인간의 건강과 잠재력 개발을 위한 각종 수련법과 값비싼 종교용품들이 난립하는 것도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종교성 상실의 시대
오늘날 거대화된 종교는 일견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번영을 구가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교단의 조직이 비대화된 것일 뿐, 세계의 신비를 느끼고 기쁨을 찾고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본래적 의미의 ‘종교성’은 끝없이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197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종교인구 변화추세를 살펴볼 때, 지난 30년 동안 전체 종교인구가 증가한 곳은 인도네시아 등 남아시아국가(0.8%) 뿐이고, 다른 지역은 모두 종교인구 비율이 감소했다.
일본 종교학자 우에다 노리유키는 <종교의 위기>에서 “거대화된 종교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번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교단의 조직이 비대화된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세계의 신비를 느끼고 기쁨을 찾고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본래적 의미의 ‘종교성’은 끝없이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물질이 풍요로워지면 상대적으로 정신세계는 공허해질수 있다. 사회적 범죄도 그 근본원인은 정신의 황폐화 때문이다. 끊임없는 자아탐구를 통해 참된 본성을 확인하는 불교의 전통은 정신과 물질의 조화를 가능케 하는 명약이 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