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을 거치며 인류의 역사와 문화 창달을 이끌었던 불교가 ‘지금-여기’에서 21세기의 대안사상으로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두루 통용되는 보편적인 진리와 그 실천성까지 담보하고 있는 불교는 현대의 평화, 인권, 환경 관련 사안 등 우리 시대의 당면한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를통해 불교는 미래사회 인류가 바른 삶을 서원하고 실천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평 화
‘미친 운전사의 질주를 막아야 한다’는 무슬림의 테러 논리가 다시 ‘미친 운전사인 독재자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미국의 공격 논리로 돌변하고 있는 시대. 미국의 세계패권전략과 이슬람의 회교근본주의가 충돌하면서 ‘전쟁과 평화’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라크 파병과 관련한 수많은 논쟁이 거듭됐고 파병이 결정된 현재까지도 ‘명분없는 파병’을 철회하라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불교계 역시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불교환경연대 등 18개 단체가 반전평화불교대책위원회를 구성, 파병철회를 촉구하며 부처님 가르침 속의 상생과 평화를 논하고 있다.
<범망경> 제11계 ‘통국사명계(通國使命戒)’에서는 “군사를 일으켜 서로 다투고 한량없는 중생을 살해하지 마라. 더구나 보살은 군대 안에 들어가 왕래조차 하지 마라”고 가르친다. 또한 <법구경>에서는 “원한은 원한에 의해 결코 풀어지지 않는다. 원한은 버릴 때에만 풀리나니, 이것은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라는 구절로써 불교의 고전적 평화사상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불교가 말하는 진정한 평화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닌, 이익과 관계된 분노와 탐욕까지 덜어낸 ‘평정한 마음’ 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원효의 ‘화쟁론’에서도 불교적 평화의 한 방편을 읽을 수 있다. 원효는 삼국이 대립하며 싸우던 시절, 모든 대립과 갈등을 한마음(一心)으로 모아 모든 중생을 구원하고자 했다. 그는 종파를 떠나 자리(自利)와 이타(利他), 반야와 유식, 돈(頓)과 점(漸) 등 서로 대립적인 교의뿐만 아니라 염(染)과 정(淨), 진(眞)과 속(俗)등 이항 대립적인 개념을 하나로 아울렀다. 또한 간디는 힘의 논리와 폭력으로 세계 곳곳을 휘두르던 대영제국에 맞서 불교 특유의 아힘사(비폭력) 정신으로 맞섰다. 나라를 빼앗기고 100만 인구의 목숨마저 내놓아야 했던 티베트 망명 지도자 달라이라마도 “내가 갚을 차례일 때 참아야 윤회가 끊어진다”며 오히려 “중국인을 위해 자비심을 키우자”는 정신으로 힘겨운 저항을 끌어가고 있다.
이 같은 불교적 평화사상은 21세기 현대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불교평화교우회는 폭력과 인종차별주의로 신음하고 있는 사회의 고통을 치유하겠다는 서원으로 전세계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고, 참여불교세대연대 역시 지뢰퇴치운동, 국제세미나 등을 통해 사회문제의 불교적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국내 단체로는 정토회 산하 JTS, 좋은벗들 등이 아프가니스탄과 인도 등지에서 국제기아ㆍ질병ㆍ문맹퇴치 민간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와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등은 대북지원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쓰고 있다.
평화학의 창시학이자 불교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요한 칼퉁(Johan Galtung) 교수의 ‘적극적 평화’ 개념, 즉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닌 개개인의 인권과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평화개념이 불자들의 활동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환 경
북한산 관통도로 저지운동, 수경 스님의 삼보일배 대장정, 지율 스님 등의 천성산 살리기 고행 등이 진행되면서 불교계에는 ‘환경’이라는 화두가 불꽃처럼 되살아났다. 불살생 계율을 원칙삼아 근근히 이어오던 불교계 환경보호 운동은 이들의 적극적 실천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환경보호의 불교적 실천을 이끄는 근본은 역시 ‘연기법’이다. 모든 것은 인연화합에 의해 형성된 산물이요, 자립적인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연기법의 핵심이다. 현대 사회학에서 ‘사회’의 개념을 인간과 자연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때문에 불교의 환경론은 ‘불살생계’의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굴레에 빠져 있는 모든 것들을 살려주라’는 ‘방생계’의 우주적인 차원으로까지 전개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리에 기초해 벌이는 생활환경운동은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불교의 식사문화인 발우공양은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대안적 해결방책으로 각광받고 있다. 음식을 함께 나누며 공동체의 단결과 화합 또한 꾀할 수 있어, 상의상존ㆍ상호보완의 이치를 생활 속에서 구현할 수 있는 생활운동으로 꼽힌다.
또한 실상사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등은 도농ㆍ지역공동체 운동, 대안공동체 운동, 귀농운동 등을 중점적으로 이끌고 있으며, 불교환경연대는 북한산ㆍ수락산ㆍ불암산 살리기와 천성산ㆍ금정산 살리기 등의 환경 현안에 적극적으로 나서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참여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인 권
유엔(UN) 헌장에서는 오늘날 ‘인권’이라 부르는 것을 자연권, 즉 인간 본성으로부터 도출되는 권리로 취급한다. 유신론적 전통에서는 인간 존엄의 궁극적 근원은 인간의 신성성이다. 즉 인간의 존엄은 인간이 신의 이미지로 창조됐다는데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불교의 경우는 어떠할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탄생과 함께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온 세상이 모두 괴로움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고 말했다. 이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모든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 진리를 깨닫고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 된다. 이는 ‘이 세상 모든 존재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인간 존엄의 일대 선언이요, 모든 존재에 내재한다는 불성(佛性)에 대한 적극적인 신뢰다.
이 같은 가르침은 구체적인 실천으로 전개됐다. 석가모니는 철저한 계급사회의 틀을 깨고 승단 내 사성(四姓) 계급의 평등을 추구했으며, 당시 남성과 동물 중간정도로 인식되던 여성에게도 동등한 지위와 자격을 부여했다.
조준호(동국대 강사) 는 “<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재가 아라한 21인 가운데 우바새와 우바이가 각각 11명과 10명으로 나타날 정도”라며 “초기불교시대 여성재가불자의 위상은 상상을 넘어선다”고 말한다.
21세기 현대에서도 이 같은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며, 동시에 불교인권운동의 근본이 되고 있다. 불교인권위원회, 한국 JTS, 참여불교재가연대 등의 불교 단체들은 국제난민, 외국인노동자, 양심수 등의 인권을 위해 사무량심(四無量心)의 자세로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또한 차별과 억압의 기제가 되고 있는 호주제, 사형제도 등의 폐지운동 역시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으로 밀도있게 진행해 나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