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정부는 북한산 국립공원에 길이 4km, 폭 40m에 이르는 장대터널을 뚫으려는 것인가. 절대보존구역으로 지정해 놓은 곳이 국립공원이며, 국립공원 내에서는 개인 소유의 땅일지라도 재산권조차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이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국립공원이 지닌 자연생태ㆍ역사문화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 후손들의 세대에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와 권리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점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불교계와 많은 시민ㆍ환경 단체들이 2년여 동안 반대활동을 펼쳐왔던 것이다. 특히 불교의 환경활동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현하는 거룩한 신앙행위이며, 나아가 가르침 그 자체라는 의미를 지닌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르치신 핵심 내용은 연기(緣起)와 자비(慈悲)인데,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 온갖 미물도 당연히 ‘나’를 형성하는 또 다른 나이다. 따라서 자연과 온갖 미물은 자비를 베푸는 대상이기 이전에 귀히 여겨야 할 ‘우리’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불교계는 환경의 문제에 대해 멀찍이 떨어져서 벌어지는, 우리와는 무관한 남의 일인 양 너무나 무심했다. 이제야 환경 문제의 본질을 파악한 몇몇 스님들의 몇 마디 언사로는 표현하기 힘든 처절한 호소와 불교환경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연기와 자비의 가르침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
그런데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을 추진하는 정부의 최근 행태를 보면 너무 치졸하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노선재검토위원회 위원 다수의 ‘관통 불가’ 의견도 무시하더니, 최근에는 불교계가 공론조사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곧 노선을 결정하겠다는 내용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 그러나 조계종 총무원은 분명히 공론조사를 거부하지 않았다. 관통노선과 비교할 수 있는 몇 개의 대안노선에 대해서도 충분한 조사를 거쳐 공론조사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노선이 결정되면 전통문화와 환경의 문제가 충분히 고려된 노선설계를 하자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왔다. 그런데 정부가 조계종의 이 같은 입장을 공론조사 거부로 받아들인 것은 관통노선을 강행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 하나, 정부는 12월 안에 노선을 결정하겠다는데, 근거가 무엇인가. 공론조사를 하자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6개월여의 기간이 필요한데, 12월로 시한을 잡은 것은 공론조사를 형식적인 절차쯤으로 여겼음을 고백한 것이다. 정부의 결정이 이런 식으로 이뤄지니 갈등이 진정되기는커녕 증폭되는 것이다.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도로를 반대하는 불교계와 환경단체를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는 집단으로 매도하기에 이른 것은 치졸함의 극치이다. 환경과 수행의 가치를 부정하는 행태이며, 잘못된 개발정책의 책임을 떠넘기는 구태의 전형이다. 또 총리실의 한 공무원이 “관통노선을 결정해도 불교계의 반발이 일회성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이는 불교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막말을 해대는 사람이 고위공직에 앉아있는 한 우리 사회의 갈등은 합리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정부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북한산 관통도로 문제에 임해야 한다. 불교계와 시민·환경 단체의 의견을 겸허하게 경청하고, 사회적인 합의절차와 환경과 문화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지금 다시 그 기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