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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명의 영웅'들이 전해준 '희망'
광주 전남 백혈병 소아암 완치잔치
생명나눔 실천본부 광주전남지역본부장인 현장 스님(오른쪽)을 비롯 의사드로가 소아암 완치 아이들이 축하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구랍 12월 23일, 전남대 병원 6동 7층 대강당에서 오랜만에 떠나 갈 듯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제 3회 광주 전남 백혈병 소아암 완치잔치’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날 주인공은 혈액암의 일종인 백혈병과 뇌종양을 넉다운 시킨, 이름하여 ‘43인의 영웅’들이다. 이들은 골수를 제공받았거나 항암치료 후 약물치료로 병세를 이겨내고, 2-3년간 다시 재발되지 않아 전문의로부터 최종 ‘완치판정’을 받기 위해 모였다. 드디어 영광스런 ‘완치판정’의 순간. 사회자의 호명에 영웅들이 무대 앞으로 나섰다. 병원장과 의사, 후원단체장이 금메달을 수여하며 축하했다. 어느 누구도 눈물 흘리지 않았다. 함께 자리한 투병중인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듯 더 이상 얼굴에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지역에서 유일하게 혈소판 헌혈 공여 뿐 아니라 생일잔치, 투병비지원 등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생명나눔 광주전남 본부장 현장 스님은 아이들의 목에 완치메달을 걸어주며 머리를 서로 맞대고 기도했다.

“장하고 장하다. 이제 그 힘으로 세상을 맑게 해다오.”
현장 스님은 격려사를 통해 “세상에는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더러운 전쟁과 성(聖)스러운 전쟁이 있다”고 전제하고 “여러분은 자신의 병과 성스런 싸움을 하여 이긴 영웅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성스런 존재가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소아암을 이겨낸 영웅들의 장기자랑시간이 되자 아직도 병고를 이겨내고 있는 형전(16)이가 피아노를 치고 싶다며 사회자에게 요청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1999년, 형전이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 2년반의 치료기간 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절망으로 하루 종일 집안에 있을 때 피아노가 유일한 친구였다. 이날 2백여 명의 관객 앞에서 연주한 곡은 ‘케논 연주곡’이었다. 단 두 달간의 피아노 레슨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믿기지 않는 솜씨였다.

그래도 형전이는 운이 좋은 편이다. 2년 전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직 전문의의 완치판정은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 재발하지 않는다면 내년엔 영웅칭호를 받으며 완치메달을 목에 걸을 수 있다.

“소아암을 앓는 아이들은 마음이 너무 착하고 어른스러워요. 아픈 자신보다 주변사람들의 어려움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자기 몸을 스스로 관리하는 것을 보면 배울 것이 더 많아요.”

소아암 완치를 축하하는 음식을 마련하고, 매월 아이들의 생일잔치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생명나눔 실천본부 광주전남 지역본부(본부장 현장스님) 자원봉사자 백 자인화 보살은 “선진국에서 소아암의 완치율은 80∼90%인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치료비가 없어 하루에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소아암으로 죽어간다”며 안타까워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드라마에서 보면 얼마나 슬플까했는데 내 아이가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땐 슬프다기보다 무섭기만 했어요.”

단비엄마 우필숙(41)씨는 단비가 만 3세 되던 5년 전, 감기로 열이 난 단비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가 이름도 생소한 ‘림프구성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 후 계속되는 척수검사와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지고 고통스러워하는 단비를 볼 때마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형벌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단비의 병은 일찍 발견되어 치료가 순조로웠고 몇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이제는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다.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달리 백혈병은 유전이 아니다. 아무리 건강하다 할지라도 혈액이 있는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것도 시도때도 없다. 국내에서만 1년이면 1200명의 어린이가 백혈병을 포함한 소아암 진단을 받는다. 성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른도 1년이면 3000여명이 혈액암으로 절망한다.

그렇다고 치료되지 않는 불치병은 아니다. 꾸준히 치료하면 70%이상 치료된다. 치료기간이 길어서 그렇지 골수기증만 된다면 대부분 완치된다.

우리나라 골수은행에 등록된 골수기증자는 4만 명 가량 된다. 선진국의 1/3수준이다. 국내에 소아암환자만 3만 명이니 여기서 서로 맞는 혈액을 찾기란 하늘에서 별따기이다. 전문의들에 의하면 골수이식 기증자가 두배로 늘어난다면 형전이처럼 완치자도 그만큼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날 43인의 영웅들이 보여준 것은 희망이다. 완치된다는,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겠다는 한가닥 빛. 절박한 순간에도 오직 완치하겠다는 희망.

강당 한편에서 지난 4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성용이가 서툰 젓가락 솜씨로 엄마에게 계속 먹을 것을 입에 넣어준다. 1월이 생일이니 만 6세다. 다른 아이 같으면 엄마 품속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먹을 것 투정을 하련만 성용이는 제가 먹을 것을 엄마에게 준다.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몸의 고통을 알았고, 그래서 남을 위하는 넉넉한 마음이 생긴 것이다.

엄마는 믿는다. 성용이도 해낼 것이다. 새해에는 완치메달을 엄마 목에 걸어줄 것이다.

이렇게 소아암 아이들의 가슴에 붉은 태양만큼이나 강렬하고 힘찬 ‘해내겠다’는 용기와 희망 속에 새해가 시작되고 있다. 생명나눔 실천본부 광주전남 지역지부(062-234-6602)

<완치 사례> 정솔빈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생각하면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잃은 것도 많았고 배움과 깨달음 또한 많았습니다.
오랜 시간 어둠의 긴 터널을 하염없이 헤매야 했고 소중한 친구들 선생님, 정들었던 교실과의 긴 이별은 나에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습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태어나 처음 알았고 너무나 생소한 병명을 접할 때 그저 그런 병이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엄마, 아빠의 표정은 너무 심각하고 불안해 하셨습니다. 저는 달님과 별님에게 애원하며 빌었습니다.
“나를 지켜달라고. 그리고 나와함께 이 시련을 나누어 가지자고” 수 없이 빌고 또 빌었습니다. 치료가 시작되고 많은 시간이 흐를수록 저는 지치고 약해져만 갔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은 불안감과 공포심이 나를 휘감고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보다 차라리 모든 것을 체념하고 싶은 충동이 갈수록 더해 갔습니다. 주사 바늘은 내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몸 안에 들어온 액체는 온몸을 벌집 쑤셔놓듯이 파괴해 갔습니다.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불순물들은 왜 그리 메스껍고 고약한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현재가 아닌 먼 과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모든 고난과 역경을 잘 이겨내고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만들기 위해 2년 전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던 골수이식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던 악마들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육체로 탈바꿈 되어갔습니다. 완전한 승리이자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가족 여러분!
세상은 아름답고 따뜻하답니다.
이준엽 기자 | maha@buddhapia.com
2003-12-29 오전 8: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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