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옹 스님 장의위원회 홍보실(실장 금강 스님)은 어제에 이어 12월 17일에도 서옹 스님의 수행일화를 소개했다.
- 몸에 밴 근검 절약정신
서옹 대종사는 원적에 들기 3일전까지 근검, 절약정신을 몸에 지녔다고 시자인 호산 스님이 전했다.
“큰스님은 남의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 시비가 끊어진 무위진인이었다”고 말한 호산 스님은 “화장실에서도 휴지 3칸을 절단해 꼬깃꼬깃 접어 사용할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뛰어난 분이셨다”며 “세수하실 때에도 한 바가지를 낭비하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이유에 대해 물으면 대종사는 “수행자는 물 한방울, 휴지 한 장 아껴야 수행자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 자신을 ‘등불’ ‘부처’로 비유
서옹 대종사가 입적하시기 전 시자인 호산 스님이 “큰스님 92평생을 살아온 인생을 한마디의 선지로 말하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종사는 “등불, 등불”이라고 답했다. 이유를 물은 즉 “등불은 잠시 밝았다가 꺼져버리잖아” 라고 자신을 비유했다고. 또 며칠 후에 같은 질문을 던지자 이번에는 “부처, 부처”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부처마음을 갖고 있고, 모든 이들이 부처되길 노력하니 나도 부처지”라고 대답을 했다고.
- 부처님 예경 목숨처럼 여겨
90년대 말 참사람 결사운동 사무처장을 맡았던 손상좌 금강 스님이 백양사에 머물며 서옹 대종사를 가까이서 뵌 이야기다. 당시 서옹 대종사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 예경을 게을리 하지 않았단다. 대종사는 혹여 저녁 예불 때 밤길이 어두워질 때면 항상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환기를 한 후 예불을 모셨고, 이어 ‘능엄주’를 외웠다고 한다.
- 92세까지 건강비결은 포행
서옹 대종사는 언제나 방에 성철 향곡 스님의 사진을 곁에 두면서 “저분들이 나보다 몸이 좋았는데 일찍 가셨어”라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대종사는 백양사에 머물면서 언제나 시계처럼 아침, 점심, 저녁공양 후 포행을 하며 건강을 지키셨다고 한다. 대종사는 서울 백운암에 머물 때에도 숭실대 운동장으로 포행을 나가기도 했다고. 또한 스님은 소식(小食)을 하며 건강관리를 철저히 한 수행자였다.
- 나이 드셔도 자주 나들이 해
최근까지도 서울, 일본에 법문하러 가시는 등 자주 다니셨다. 스님은 일본 유학을 갔다 왔기에 통역 없이도 언어소통이 원활했다. 그래서 “스님 이제 나이도 많으신데 백양사 산중에 계시면서 후학들을 지도하셔야죠”라고 시자 스님들이 물으면, “너 모르는 말 마라. 나이 먹으면 ‘놀라리 혀야 뎌’(쉬면서 살아야 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이 드셔도 왕성한 활동을 하며 사부대중을 제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