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장례위원회 홍보를 맡고 있는 금강 스님(미황사 주지)은 12월 16일 서옹 스님의 수행일화를 공개했다.
1. ‘항상 화두 참구하라’고 당부한 엄격한 스승
백양사문도 대표이며 상좌인 원로의원 지종 스님이 전한 스님은 엄격한 수행을 당부한 스승으로 기억에 남는다. 지종 스님은 서옹 대종사에 대해 “한국에서 승속을 막론하고 가장 청정한 종교인 중의 한 분”이라며 추도의 마음을 전했다. 지종 스님은 “언제나 마음을 비우고 자나 깨나, 가나 오나, 화두일념으로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며 “화두를 타파해 생사를 초탈하라는 철두철미한 가르침을 엄격하게 가르친 스승이셨다”고 말했다.
2. 마음 따뜻한 서옹 대종사
법상좌인 원로의원 천운 스님은 “서옹 대종사의 따뜻한 마음이 가신 뒤에도 온기가 피어나고 있다”며 대종사와의 인연을 밝혔다. 서옹 대종사는 일본을 자주 드나들면서 천운 스님이 좋아하는 향을 자주 사가지고 와서 선물로 내놓았다. 또 어떤 때는 과자나 빵을 손수 사와서 내놓아 “뭣 하러 이런 것을 사 가지고 오시냐”고 저어하면, “어른도 이런 선물 사다주는 것이여”라며 따뜻한 마음을 내보이셨다 한다. 서옹 대종사는 천운 스님에게 “사람에겐 항상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만인에게 자비심을 가질 것을 자주 당부했다고 한다. 그 뜻을 받들어 천운 스님은 지금까지 불교복지 사업에 앞장서오고 있다.
3. 원로의원 성수 스님과 치열한 구도행
조계종 원로의원인 성수 스님은 지난 15일 문상을 마친 후에 “스님과 나는 함께 지내며 치열한 구도행을 펼쳤다”고 회고했다. 성수 스님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봉암사와 서울 백운암에서도 몇 철을 같이 나며 철저한 구도행을 펼쳤는데 특히 서울 백운암에서는 몇 개월을 수행정진 하시다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백운암 위의 처소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수행에 전념하시는 철저함을 보이셨다”고 말했다.
4. “승려는 행동이 품도에서 벗어나선 안돼”
상좌인 지선 스님은 은사인 서옹 대종사의 꼿꼿한 모습을 항상 존경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을 견지한 스님의 모습을 보고 그 연유를 물었는데 대답은 조부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대종사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정3품 벼슬을 했던 조부인 이창진옹으로부터 한문을 배우는 등 영향을 받아 유교와 불교에 능통한 어른이었다고 한다. 대종사는 항상 “조부님을 성인으로 알고 배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승려는 언제나 성체(聖體)가 품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면서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품행이 바른 마승비구(녹야원에서 아라한과를 증득한 5비구 중 한 분. 부처님 10대 중 사리불과 목건련 존자를 부처님께 인도한 분)를 예로 들며 수행자의 올곧은 자세를 견지했다고 한다.
5. 일본 임제종 묘심사서 3년간 철저한 수행 유명
스님의 상좌인 두백 스님은 서옹 대종사가 30세 되던 해에 일본 임제종 묘심사에서 정진할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참선수행의 모범을 보였던 일본 임제종에서 서옹 대종사는 부처님 같은 대접을 받았다. 당시 임제종 선원 입방식 과정은 3일 동안 대기하면서 온갖 방해를 극복해야 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발로 차고 시비를 하기도 해 대부분 수행자들은 그 화를 못 참고 돌아가기 일쑤였단다. 그런데 서옹 대종사는 오가는 사람들이 발로 차고 시비를 해도 빙그레 웃으면서 편안한 모습을 보여 2일 만에 통과했다고 한다. “화장실 청소 등 일상생활도 대중들의 모범이 됐다”고 두백 스님은 설명했다.
6. ‘선필의 대가’로 이름 높아
서옹 대종사의 선필은 유명한 서예가를 감복시키기도 했다. 대흥사 주지 몽산 스님이 전한 바에 따르면 남도지방 유명한 서예가가 서옹 대종사를 찾아와 “좋은 글을 써 주겠다”며 붓을 꺼내 들었다고 한다. 이에 서옹 대종사 잠시 만류하고 큰 붓을 꺼내 두 손으로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쓰자 더 이상 글씨를 쓸 엄두를 못냈다고 한다. 당시 유명한 그 서예가는 서옹 대종사의 수행에서 우러나오는 선필에 큰 감화를 받아 높이 받들게 됐다고 한다.
7. 사람 보는 예지력도 지녀
상좌 두백 스님의 회고에 따르면 철저한 수행으로 무위진인(無位眞人)의 경지를 보였던 서옹 대종사는 사람을 보는 예지력도 가졌다. 대종사가 1979년 대흥사 주석하고 있을 때의 일. 당시 대흥사에는 광주교육사령관인 윤모씨가 찾아와 대종사를 친견했다고 한다. 그때 대종사는 “자네 별이 몇 개인가” 묻자 “예, 세 개입니다”했다고. 그리고 대종사는 대뜸 그 사람을 향해 “자네 얼굴 보니 장관하겠네”라고 답했다. 나중에 윤모씨는 서옹 대종사의 예언대로 체신부 장관을 했다는 후일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