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현대불교에 실린 서옹 스님의 법문이다.
[가까이서 뵌 큰스님]서옹 스님(백양사 방장) [현대불교 2002-01-23]
흰눈이 수북이 쌓여 하얗게 변한 백암산(白巖山). 수 많은 흰 양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위해 앉아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백양사에는 흰 양같은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보리를 구하고 있는 납자들이 화두 삼매에 빠져 있었다. 절이 산자수명한 곳에 자리잡은 것은 부처님의 뜻이 아닐까. 절은 산에 있는 것만으로도 세속에 찌든 중생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 인간이 지향해야할 가치를 상기시켜 준다.
경치 수려한 산에 절이 있고, 큰 절에는 큰 스님이 나고 머물러 중생들의 마음은 언제나 푸근하게 한다는 말이 허투루 생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젊었을 땐 몸이 약해 60살까지만 살까 했는데, 부처님 신심으로 살다보니 91살이 됐어. 산중에 사는 사람에게 무슨 들을 말이 있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그래서 요즘은 대학교수 이상으로 말을 많이 해. 허허”
깊은 산중에 계시기에 세상사 번잡한 소리에는 둔해도 자연의 조화에는 눈과 귀가 밝은 서옹(西翁) 큰스님(고불총림 백양사 방장)은 선방 수좌들에게 5일마다 한번씩 소참법문을 하고, 공부하다 의문이 생길 때는 곧장 주석처로 찾아올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재가불자들의 방문에도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해주시는 큰스님.
“자기 자신이 참모습이야. 그러니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순수한 자리를 깨닫도록 해야 해.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깨달으면 생사를 초탈할 수 있고, 우주가 곧 자기 생명체가 되어버려. 생문제를 해결할 것이 이것 밖에 없으니 잘 해봐. 참선하는 일은 인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니 환희심으로 원력을 세워 성취해야 해”
스님은 중생들에게 무한한 자비심으로 쉼 없는 가르침을 내려주시고 계셨다. 스님이 인간의 참모습을 해결하는 참사람을 깨닫기 위해 강조하시는 방법은 오로지 인간문제를 근원적이며 전체적인 입장에서 확철대오(廓撤大悟)하는 ‘조사선(祖師禪)’이다. 선정을 닦음으로써 해탈을 얻고자 했던 선은 역대 스님들의 수행방법이었다. 왜 조사선인가.
“조사선은 인간의 생사와 죄악이 없이 자유자재한 참모습을 완전히 해결했으며, 현대 인간상이 파경에 온 것을 구제할 수 있는 자유자재하고 자비로운 실상이야. 생사문제의 해결은 화두(話頭)가 열쇠이지. 죽을 날짜가 코앞에 닥친 사형수가 도망가듯이, 딴 생각할 겨를 없는 사형수처럼 1700 공안(公案) 화두에 들어 ‘이놈이 뭘까’ 자꾸 의심하면 긴장이 한 덩어리로 되어서 의식자체를 초탈해버리는 눈이 일시에 열려. 그래서 자기 생명체 즉 참 자리가 살아나는 이치인 것이야. 그래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영혼 절대의 그 자리가 절대 불변하지. 껍데기는 같지만 내용 경계는 달라. 삶과 죽음에 물들지 않고, 가고 머무름에 구애받지 않아. 말과 글은 약방문에 불과하니 화두 참선을 해야 해. 누구든지 화두참선을 지극히 하면 생과 사를 벗어나 무엇에도 걸림 없는 영원히 자유자재한 참 나를 찾을 수 있어”
스님이 70년대부터 줄기차게 주창하시는 ‘참사람’은 당나라 고승 임제 의현선사가 말한 ‘무위진인(無位眞人)’이다. 스님은 참사람을 통해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할 때 인간주의 ‘욕망’으로 흐르는 세계를 구제하고 앞으로의 역사를 평화적으로 창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참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참사람이란 상하, 귀천, 성인과 범부 등을 초월해 어떤 막힘도 없이 본래 면목에 투철한 사람을 말하지. 그러니 자각한 사람의 참모습이야. 자아를 초월한 본성자리요, 인간의 진실성을 근원적으로 드러낸 본래의 자기 자신이지. 본래 자기의 모습이 참사람이니 무명(無明)과 욕망의 장애를 벗어버리고 분별과 아집을 타파해 진실한 인간상인 ‘참나’를 되찾으면 나와 남의 대립, 시간과 공간의 일체를 초월해. 그래서 참사람은 참으로 자유자재하고 절대 평등하며 대자대비하지. 우리 스스로 참사람임을 믿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지”
조사선이 뜻있는 불자들 누구나 참구할 수 있는 보편적 참선법이기를 바라는 스님의 간절한 소망은 98년부터 고불총림에서 지위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한 데 모여 서로의 경지를 묻고 답하는 무차선회(無遮禪會)를 2년마다 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에 와서 위기에 처한 조사선의 종지를 세계에 인식시켜, 인류가 행복하게 사는 세계평화를 건설하기 위해서다.
“참선은 산중에서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산중에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마음으로 생활 속에서 수행하는 것이야.”
원래 화두선의 성립배경을 보면 초창기에는 대상이 모두 재가불자였다. 그들이 지식층으로 한정되기는 했으나 모두가 생활인이었던 것이다. 요즘 들어 조사선은 참선납승의 전유물처럼 치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화두 참선법을 확립한 송나라 대혜선사는 일상생활 가운데서 공부를 지으라고 강조했다. 즉 시끄러운 가운데 힘을 얻음이 수승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요즘 미국과 아프카니스탄의 전쟁 등을 보듯 인류가 욕망대로 살아가다보니 질서가 파괴되고 사회가 혼란하게 된 것일까. 전 세계 인류가 조사선을 통해 해결되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는 서양문명이 한국을 비롯하여 온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에 ‘욕망으로 싸우는 투쟁의 시대’가 되었어. 사람이 이렇게 싸우다 보면 이 세계는 인류가 살 수 없도록 되어버린단 말이야. 인류가 멸망하는 거지. 그럼 어떻게 하면 세계인류를 구할 수 있을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야. 자유자재의 자리인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찾는 거야. 그것만이 인간주의 타락을 구제할 수 있어. 불법을 깨닫는 참사람의 정신으로 구제해야 해. 인류 전부가 참사람인데 그걸 망각하고 살아. 자기 자신이 참사람인데 환경에, 과학문명에 끄달려서 노예가 되고 제정신이 없이 살지. 그게 문제야.
조사선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지. 우주가 모두 조화돼서 서로 의지하고 힘과 은혜를 입고 살면서 함께 공존한다고 파악해. 그렇기 때문에 조사선의 가르침을 통해 인간은 아름답고 즐거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거지. 조사선 바탕위에선 누구나 자비심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무너진 인간 질서를 회복할 수 있어. 그래서 환경을 파괴,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죽이고 사람도 못살게 만드는 거야. 인간은 여러 가지 훌륭한 능력이 있는데도 욕망 때문에 타락하고 싸우는 시대가 됐어”
스님은 사람들이 참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모른다고 경책하셨다. 과학의 힘을 절대시 하는 현대인들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 중심적 태도가 환경문제를 야기한다는 말씀이다. 환경파괴는 이기적 산물이요, 역사발전의 원초적 힘은 욕망으로부터 비롯되고 그것의 구체적 방법은 분열과 대립투쟁으로 해결하려는 잘못된 견해가 지배하는 시대에 대한 스님의 할이다.
스님이 잠시 산책을 하시고 싶다며 경내로 나오셨다. 스님은 조그만 연못 앞에 서서 선풍종가를 상징하듯 곧은 기세로 뻗어있는 백암산을 바라보시며 “인간의 참모습을 깨닫고 보면 우주와 하나야. 산을 보면 부처님의 참모습을 드러낸 것 같아 흐뭇해”라고 되뇌이셨다.
스님께 어리석은 질문을 몇 마디 했다.
-스님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자신의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야”
-그럼 깨달음을 이룬 후에는 수행이 필요치 않습니까?
“마음속에 이미 도가 있는데 무슨 수행이 필요하겠어. 다만 그 청정한 마음을 오염시키지만 않으면 돼. 보통사람과 성인이 따로 없으며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아. 구별하는 마음과 집착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살아나가야 해”
스님의 견성성불은 점오가 아니라 자성(自性)이 곧 진불(眞佛)임을 깨우치는 돈오이다. 인간의 본성을 대상화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본래부터 깨달음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며, 그 본성을 아는 것이 그대로 불타라는 것이다.
-스님, 남을 위해 기도하라는 가르침을 들으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않는 것이 중생심입니다.
“우리 인간은 생각 하는 대로 파동이 일어나. 남을 건강하라고 하면 생명파동이 일어나고, 남에게 잘 되라고 하면 자신도 잘되고 가족 민족 인류가 잘돼. 나만 행복하면 될 것 같지만 주위사람이 행복해야 내가 잘되는 것이야”
스님은 이어 “물을 보면 물이 되고 꽃을 보면 꽃과 하나가 되어있다고 해도 본래 없는 것이 아니고 비었다 해도 원래 있는 것이 아니야. 무엇도 널 구속하기 어려운데 누가 널 어쩌겠어. 눈은 보는 것이고, 귀는 듣는 것이고, 코는 냄새 맡는 것이고, 입은 담론하는 것이고, 손은 잡는 것이고, 발은 분주히 움직이는 것. 이들은 서로 차별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없으니 흔들림이 없어. 실체가 없으면 자유로이 행동하고, 이 자유자재한 마음이 곧 지혜야”라고 설했다.
스님은 어려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원리라며 ‘자비무궁(慈悲無窮)’의 가르침을 주셨다.
“인간은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존중하고 서로 돕지 않고서는 살 수 없어. 이웃에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는 자기 본위의 생각을 용감하게 버려야 해. 혹, 나는 자비심을 베푸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비심이 아니지. 그래서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러나 남북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보다 통일이 백번 낫겠지. 또 통일에 이르는 과정이 자비의 실천이라고 한다면, 불자들에게 더없는 수행의 노정이야. 그리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통일을 만들지 않으면 이루어낼 수도 없다는 점을 깊이 알아야 해”
스님은 “내가 저녁에 누구 만날 일이 있어. 오늘은 백양사에서 밥 먹고, 잠자고 가…,” 스님은 재차 하루 묵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스님을 친견하고 인간의 가장 깊은 만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짧으면서도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만남에 대해.
서옹스님은?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서옹 스님은 70년대부터 ‘조사선’으로 세계평화와 자유를 이루기 위해 참사람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를 위해 스님은 98년부터 2년에 한번씩 국제학술대회인 ‘무차선회’를 개최하여, 멸망의 위기에 처한 인류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대를 이룩할 수 있는 길이 인간주의를 초월한 ‘참사람주의’라고 보고 이 정신운동 구현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스님은 한국불교 선풍 진작을 위해 문을 개방하여, 법거량하는 납자들이 자유자재로 찾아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912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한 서옹스님은 32년 당시 불법을 생활속에서 실천하던 고승 만암 대종사를 찾아가 득도했다. 스님은 35년 중앙불교전문학교 졸업하고, 오대산 상원사에서 탄허 고암 월하스님과 한암스님을 모시고 선수행을 하고, 39년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 임제대학을 41년 졸업했다.
스님은 62년 동국대 선학원장, 도봉산 무문관, 동화사, 백양사, 봉암사 조실, 74년부터 79년까지 조계종 5대 종정을 역임했다.
서옹스님(고불총림 방장) [현대불교 2002-10-15]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답해 봐.”
10월 4일, 서울 상도동 백운암에서 만난 고불총림 방장 서옹 스님은 말씀을 마치시면서 기자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참사람이 되는 것, 그것만이 잘 사는 길입니다.”
활짝 웃으셨다. 아주 맑게.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 미소, 스님의 어떤 가르침보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91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선(禪)을 바탕으로 한 참사람 정신을 사회 보편의 정신으로 세워 나가기 위해 서초동 참사람 운동본부 설립 준비에 바쁜 스님께 조사선과 한국불교에 대해 여쭈었다.
◆깨닫기 위해서는 오로지 ‘조사선’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조사선이어야 하는지요.
“인간의 참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조사선이지요. 인간 세상에서 선과 악, 참과 거짓을 말하지만, 선에도 악이 항상 붙어있고, 참에도 거짓이 붙어 있으며, 아름다움의 이면에도 추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것을 초월한 것이 종교이고, 이 종교와 인간까지 초월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조사선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조사선뿐입니다.”
◆지금 제방 선원에서 조사 선풍이 올곧게 유지되고 있는지요. 선지식이 수좌들을 제접하는 모습도 보기 힘들고, 견성에 대한 치열함이 불교 전체 수행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대형 불사와 기도 중심의 분위기가 대세인 듯합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여야 합니까.
“옛날부터 그러한 폐단은 많았습니다. 참으로 진실되게 수행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조사선의 근원을 올바로 가르치는 곳이 드문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럴수록 조사선을 더 열심히 닦아야 합니다.”
◆조사선 즉 간화선은 일반인들로서는 다가가기 힘든 수행법입니다. 심지어는 조사선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많은데, 과연 그런지, 그렇다면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또 선방 수좌들만으로 조사선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보십니까.
“올바로 하면 전혀 힘들 것이 없는데, 제대로 몰라서 그렇습니다. 큰 스승 아래서 지도 받으면 쉬운데, 다들 그렇게 하지 않고 제 멋대로 하다보니 그런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사선은 선방 수좌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승속을 떠나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다양한 수행법들이 일반인과 불자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이른바 제3수행법이라 불리우는 아봐타나, 명상요가 등이 그것입니다. 또 불교 내부에서도 위빠사나와 같은 초기 불교의 수행방법이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겉모양새로만 본다면, 이들 수행법의 등장이 조사선의 위상 자체를 흔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곧 조사선의 수행 방법에 효용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바르게 하면 쉬운데, 잘못 알고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봐타나 명상요가 같은 수행법은 인생의 깊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위빠사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빠사나는 산란한 정신을 안정시키기는 하지만 생사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진리를 꿰뚫는 참선이 필요합니다. 조사선만이 관습과 위선, 범주화된 인간의 한계를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제 참선은 더 이상 불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선을 보편적 정신으로 인식하고, 타 종교에서도 개인적 차원이나 방법론적인 차원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 전반의 수행 풍토를 보면 기도나 염불 등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선(禪)은 어떠한 의미입니까.
“근본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조사선의 껍데기만을 가져다 써서는 안됩니다. 현대 사회가 선을 수용하는 것은 서양문명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결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문화적 욕구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동양의 정신문화로서 선을 새롭게 받아들인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형식만 수용해선 인간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킬수 없습니다. 그것이 서양문명이 선을 수용하고 있는 한계이며, 때문에 이기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조사선이 더욱 절실한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70년대부터 조사선으로 세계 평화와 자유를 이루기 위한 참사람 운동을 펼치고 계십니다. 참사람이란 어떤 것입니까.
“지금 인류는 과학문명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만 이기적 욕망으로 가득 차 타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멸망뿐입니다. 자연파괴, 환경오염, 국가간의 전쟁 등 모든 것이 투쟁으로만 뻗치고 있습니다. 참사람은 상하, 귀천, 성인과 범부 등을 초월해 화해와 자유에 투철한 사람을 말합니다. 자아를 초월한 본성자리이자, 인간의 진실성을 근원적으로 드러낸 본래의 자기 자신이 참사람입니다. 세속적인 오염과 욕망의 장애를 벗어버리고 분별과 아집을 타파해서 진실한 인간상인 참 나를 되찾으면 나와 남의 대립,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참사람은 참으로 자유자재하고 절대 평등하며 대자대비합니다. 우리 스스로 참사람임을 믿고 참사람의 정신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조사선과 참사람 운동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합니까.
“조사선은 참사람이 되기 위한 수행 방법이지요. 조사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 이것이 참사람 운동의 핵심입니다. 조사선은 자아를 초월하여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근원적으로 완전히 드러내게 하며, 이러한 경지를 참사람이라고 합니다. 조사선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우주는 모두 조화롭게 서로 의지하고 서로 은혜를 주고 받으며 공존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 조사선이기에 조사선의 가르침을 통해 인간은 아름답고 즐거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조사선의 바탕 위에서는 누구나 자비심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무너진 인간의 질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조사선의 전통을 보편화시키려는 의도의 하나로 98년과 2000년 백양사에서 무차선회를 펼치셨고, 올해는 부산 해운정사에서 열립니다. 법회는 원래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데 굳이 ‘무차’ 형식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무차란 형식도 없고, 제한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평등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평등 정신에 의해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펼치셨지만,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 중생의 나쁜 습관에 의해서 그 정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도 있고, 궁극적으로 흐트러진 수행 가풍을 바로 잡는 기회로 삼기 위해 무차 형식을 취한 것입니다. 무차 법회를 열게 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미국 하와이대 칼루파하나 교수가 조사선을 연구하러 백양사에 들렀었는데, 그때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무차 법회의 전통을 이야기했더니, 왜 그 좋은 걸 하지 않느냐고 해서 무차법회를 계획했습니다. 무차 법회에서 수행자들의 공부에 도움을 주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대 변화의 물결 속에 있습니다. 정치·경제·문화 모든 분야가 급격하게 변화 발전하고 있습니다. 또 환경파괴, 남북통일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산적해 있습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한국 불교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야 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기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인류는 멸망이냐 생존이냐 하는 문명사적인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현대 문명의 병근을 치유해서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인간위주의 사고를 초월한 참사람주의라고 확신합니다. 참사람 만이 현대 과학문명의 노예로 전락한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진실 여여한 진리의 세계에는
나도 없고 남도 없어라
빨리 상응하고자 한다면
오직 둘이 아니라고 말하리
둘이 아니고 모두 한 가지이니
포용하지 못할 것이 없구나’
<승찬 스님의 신심명(信心銘) 중에서>
참사람의 입장에서는 인간과 대자연을 불이일체(不二一體)로 보며, 영원한 생명으로 봅니다.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를 바로 알고, 끊임없이 참선 수행해야 합니다. 참선을 통해 이기적인 욕망을 가라앉히고, 참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만이 인류가 살 길입니다.”
서옹스님은?
세계평화·자유 위해 ‘참사람운동’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받들어 무명과 욕망의 장애를 벗어버리고 분별과 아집을 타파하여 참나(眞人)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서옹 큰 스님은 70년대부터 조사선으로 세계 평화와 자유를 이루기 위해 참사람 운동을 펼치고 있다.
스님은 191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32년 백양사 만암 스님 문하에서 득도했다. 1935년 중앙불교전문대학교, 1941년 일본 경도임제대학교를 졸업했다. 일본 임제종 총본산 묘심사에서 수선, 3년 안거를 성만했다. 1962년 동국대 선학원장, 도봉산 무문관, 동화사, 봉암사, 백양사, 봉암사 조실을 역임했으며, 74년~79년까지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냈다.
현재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