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다. 정부가 연내에 관통노선으로 결정을 내리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산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도 단식정진도 선홍빛 낭자한 혈서도 노무현 정부와 개발론자들에겐 한낮 웃음거리밖에 안되는가? 그들에겐 조계종 종정 스님과 원로회의 유시, 중앙종회의 결의는 저잣거리의 이야깃거리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모양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불교계 첫 번째 공약으로 공언한 관통노선 백지화를 스스로 뒤집는 우스운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자본의 퀴퀴한 냄새가 온 산하를 뒤덮을 날이 머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12월 11일 북한산 살리기의 상징인 철마선원과 의정부 회룡사를 찾아갔다.
비구니 스님들이 건설회사 직원들에게 폭행당하고 폭력배에게 점거당한 현장. 철마선원은 건재했다. 잔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고 살얼음이 햇빛에 부드럽게 반사되고 있었지만, 철조망과 바리케이드 사이로 보이는 철마선원은 여전히 당당함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 너머로 무엇을 절단하는 듯 간간히 금속성 소리만 들릴 뿐이다.
시냇물을 가로지르는 목재 다리를 건너기 위해 길 건너편에서 초인종을 누르니 한 스님이 직접 나와 문을 열어준다. 20여개월간 철마선원을 지키고 있는 보성 스님이다. 스님은 우리를 안으로 인도했다.
근황을 물어보니 예불, 청소 등 다른 절집에서 하는 일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북한산 관통도로 시공사인 서울고속도로주식회사 직원들이 아침저녁으로 감시 차 온다고 한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최근 들어 그들이 매우 공손하게 스님을 대한다는 것. 스님은 대세를 읽은 그들이 혹여 일을 그르칠까 그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스님은 환경운동가도 사회운동가도 아니었다. 비구니 스님들이 폭행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러 왔다가 지금까지 있는 것이다. 지난 겨울 설치미술가인 최병수 씨와 같이 지내면서 불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계속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스님에게 공사가 재개되면 어떻게 하겠냐고 질문했다.
“요즈음 장작을 쪼개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망루에 올라가 버틸 요량으로요.”
철마선원으로 들어오기 전 들었던 금속성 소리가 장작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조계종 총무원에 대한 심정도 물어봤다.
“기대도 안합니다. 말로만 안 된다 안 된다 하지 막상 공사가 강행되면 누가 와서 막겠습니까?”
다만 뜻있는 스님 대여섯 명이라도 같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보성 스님은 북한산이 뚫리는가 안 뚫리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지난 2년여 동안 불교계가 앞장서서 저지했지만 결국 공사가 재개되면 불교계 체면이 어떻게 되겠냐는 것이다. 또 이후 환경운동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망루에 올라가 봤다. 작년 여름의 잔해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망루위에서 쳐다본 북한산은 여전히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가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의정부 회룡사로 올라가는 길. 등산객들 사이로 북한산을 살리기 위한 현수막이 군데군데 걸려있다. 살풍경한 현실이다.
회룡사 경내로 들어가니 황구와 흑구 두 마리가 전각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총무 성타 스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을 때 사진기자가 스님 얼굴 사진을 찍으려 했다. 그러자 스님이 손사래를 치며 하는 한 마디.
“사진 찍지 마세요. 이제 부끄러워서 어디 얼굴 내밀고 나다니겠어요?”
스님께 무엇부터 잘못돼 이 지경까지 왔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대답은 명쾌했다. 단결이 안돼서 그렇다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였다.
“무엇보다 환경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해서 그래요. 북한산은 어느 한 사찰의 문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 눈앞의 불똥만 생각해서 이렇게 된 겁니다. 더 많이 당하면 깨어날 거예요.”
스님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불신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위정자들이 국민을 속이려고 하는 게 문젭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어느 지인에게 백지화 됐다고 축하 전화도 받은 적이 있는데….”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목소리가 잦아있다는 걸 느꼈다. 주위가 너무 고요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춘 것이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풍경 소리만 산사를 감싸고 있었다. 스님께 정부와 개발론자들은 왜 이런 아름다움을 모를까요? 라고 질문했다.
“결국은 돈 때문이지요. 구더기가 똥이 아름답다고 사는 격입니다.”
묻고 싶지는 않지만 물어야만 할 질문을 했다. 공사가 강행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포크레인에 깔려 죽는 수밖에 없지요.”
스님은 남의 일처럼 툭 내뱉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스님의 말을 절 입구에 적혀진 글귀가 되받는다.
“산을 의지해 수행하며 생활해온 수행자가 어찌 산을 떠나서 살 수 있으며 죽어가는 산을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는가?…작은 육체의 애착을 버려 북한산과 대한민국의 모든 산이 성성이 그 푸른빛을 발할 수 있어 눈 푸른 납자들의 수행공간으로 지속될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 두렵겠는가?…북한산에 구멍이 나는 날 우리 대중 모두는 북한산과 함께 죽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