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55세의 중년 남성이 있다. 안정된 직장과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생활 속에서도 그는 늘 원인 모를 우울증에 시달렸다. 부하 직원들에게 소리를 질러대기 일쑤였고, 아침에 출근하기조차 힘들어졌다. 정신과 상담도 받아봤지만 돌아온 것은 ‘프로이드식 치료’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때, 이 중년 남성의 머리에 떠오른 것이 현장 스님(602~664)이었다. 7세기 당나라 시절, 촉망받는 승려였던 현장 스님은, 잘못 번역되고 왜곡된 경전 때문에 교리 해석을 놓고 다툼이 잦은데 회의를 느끼고, 당나라의 불법(佛法)을 바로세우기 위해 직접 인도로 건너간다.
현장 스님은 당나라 수도 장안(지금의 서안)에서 8천 킬로미터 떨어진 인도 남부까지 말과 낙타, 코끼리를 타고 갔으며, 때로는 걸어서 갔다. 길고 긴 서역으로의 여행은 순탄할 수 없었다. 당나라 황제 태종은 옥문관 너머로의 여행을 금했기에, 현장 스님은 한때 나라를 탈출한 도망자의 신세가 되기도 했고, 이글거리는 태양과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견뎌야 했으며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17년간 110여 개 나라를 거치며 인도에 다녀온 현장 스님은 임종 전까지 1,340여 권의 경전을 번역해, 중국에서 불교가 자리 잡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현장 스님의 전설적인 순례를 좇아간 주인공은 바로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의 출판 평론기자 리처드 번스타인이다. 삶에 지쳐있던 그는 1999년 55세의 나이로 여행길에 올랐다. <대당서역기> 루트를 따라 중국 동부의 서안을 출발해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고,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에 도착한 뒤,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오는 긴 여행을 감행했다. 물론, 현장 스님이 탔던 낙타나 말 대신 기차와 자동차를 이용했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뉴욕타임스 기자의 대당서역기>에서 지은이는 진리를 찾아 떠난 한 고승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발견한 용기와 열정, 그리고 깨달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기자다운 꼼꼼한 메모와 치밀한 관찰, 사실적인 묘사로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해당 지역에서의 일정과 경험들을 소상하게 전하고 있어 여행의 고단함과 그 속에 발견한 기쁨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무사히 여행을 마친 그는 한 가지, 작지만 소중한 진리를 깨닫는다. 그것은 이제 ‘기꺼이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는 직장으로, 쳇바퀴 도는 일상생활로, 시간을 소모하는 책임과 의무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됐다. 이는 곧 ‘이 세상의 현실에 맞서는 가운데 의미와 지혜가 존재한다는 실존주의적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법을 찾아 길을 떠난 현장 스님과 삶의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 길을 떠난 지은이가 길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자하는 진정한 ‘삶의 여행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뉴욕타임스 기자의 대당서역기
리처드 번스타인 지음, 정동현 옮김
꿈꾸는 돌
1만4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