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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세상보기> 부안 문제 열쇠는 ‘신뢰’
황진수/한성대 행정학 교수

‘사회적 사실(social facts)’이라는 말이 있다. 사회적으로 현존하고 있는 일로서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노령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든가, 마약복용자가 늘고 있다든가,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이 심각하다든가, 이혼건수가 일년에 12만쌍을 넘어서 세계 몇째라는 얘기라든가, 부부합계 출산율이 1.17%로 낮아져 저출산이 문제가 되고 있다라든가 하는 것은 모두 사회적 사실에 해당된다.

부안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원전센터) 유치문제를 놓고 정부와 부안 주민간에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심지어 전쟁상태까지 와 있는 상황도 ‘사회적 사실’에 해당된다. 그러면 이 사회적 사실에 어떻게 ‘가치부여’를 할 것인가? 가치부여 문제는 사회적 사실 보다 더 복잡하다. 어느 편에서 이 문제를 해석할 것인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정부입장에서 보면 부안 핵폐기물 관리센터를 우리나라 어딘가에 세워야 되는데, 후보지를 공모해 본 결과 정부입장에서 볼 때 애국적인(?) 부안군수가 유치신청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부안의 주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혜택을 고려하고, 부안에 안전하고 환경친화적인 시설을 만들어 주겠다는 식으로 제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안에서 태어나고 부안에서 성장하면서 죽어도 부안에 뼈를 묻고 대대손손이 살아가는 주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부안에 핵폐기물 관리센터가 들어선다면 그것이 안전한가. 선진국에서도 안전성 문제로 시비가 일고 있는데 우리는 안전하다는 정부말만 믿고 있어야 하는가.

만약 핵폐기장에서 방사능이 새어나온다면 나와 내 자식은 죽거나 장애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또 그 무서운 핵폐기장을 건설할 때는 주민들의 합의를 거쳐야 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정부는 군수와 합의만 하면 다 되는 것인가.
그럼 우리는 뭐란 말인가. 따라서 부안군민들은 이를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서는 부안에서의 반대시위가 평균수준 이상이라는 감(感)을 잡고 경찰병력을 대거 파견했다. 폭력을 동반한 데모를 하는 주민에 맞서 경찰도 폭력을 행사했다. 사실 민간인이 무기를 들고 데모를 하면 불법시위이고, 폭력행위지만 경찰이 폭력을 내세워 진압을 하면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가 아닌가.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주민들의 합의를 토대로 하여 핵폐기물 처리장유치결정을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일이 생각지 않게 꼬였다.

부안대책위가 주민투표안을 만들어 어렵사리 대화의 물꼬를 텃지만, 국무총리가 말을 몇 번이나 바꿨고, 산업자원부는 위도에 원전 폐기물장을 건설하겠다는 당초계획을 그대로 추진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시위의 주모자(?)를 색출하고 엄벌하겠다고 나섰다. 주민투표를 연내에 실시하려는 주민과 내년도 5~6월에 실시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정부와의 대화를 어렵게 만든 것이다.

부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을 처음의 ‘사회적 사실’로 돌아가 살펴보자. 정부는 원전폐기물을 부안에 설치해야 한다는 문제부터 재검토하고, 주민의 의사에 반(反)하는 정책결정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루고 있는가도 반성해야 한다.

또 원전센터 건립사업의 긍정적인 측면, 부정적인 측면을 사실에 입각하여 설명하고, 정보를 공유한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부안주민들도 이제 냉정을 되찾고 사실과 진실을 감정으로 덮어버리는 대응자세를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안사태의 가장 큰 핵심은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부다. 이는 군사력이 없는(非足兵) 정부나 백성이 먹을 식량이 없는(非足食) 정부보다 못하다는 공자와 제자 자공(子貢)의 대화를 상기해야 할 때이다.
2003-12-04 오전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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