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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존재(bhava)와 법(dharma)의 차이점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존재는 우리와 상관없이 외부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법은 인식을 통해 알게 되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하는 모든 것이, 법 아닌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연기법도 괴로움의 씨앗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작해서 괴로워하고 있는 법입니다.”
12월 4일,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 아늑한 공간에 15명의 보살, 거사님들이 차를 마시며 법담을 나누고 있었다. 손님들이 보기에 마치 차담을 나누는 듯한 이런 광경은 정도회라는 수행단체의 공부 장면. 무학 최남두(70) 법사가 회원들의 의문점을 문답식으로 풀어주고 있었다. 이번 모임에는 초심자들이 많아 종교의 어원, 삼법인(三法印)을 위주로 한 다양한 토론이 펼쳐졌다.
정도회를 비롯해 중급 불자들의 모임인 다나회와 덕숭총림 초대방장 혜암 스님의 유발제자들로 구성된 견도회를 이끌고 있는 무학 법사는 1963년 백봉 김기추 거사를 만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선(禪) 수행에 매진해 왔다. 이후 혜암 스님의 마지막 유발 상좌가 되어 공부하다가, 85년 5월 18일 혜암 스님으로부터 ‘견도회’란 명칭과 게송을 받은 무학 법사는 인연있는 도반과 불자들을 위해 선공부 모임을 이끌어 오고 있다.
평균연령 70대에 달하는 재가 선객들로 구성된 견도회의 회장으로서 선문답에 달통한 무학 법사는, 일반 불자들을 위해서는 아함경에서부터 시작해 남방 및 북방불교의 가르침을 비교하며 알기 쉽게 불교를 가르친다. 하지만 신심이 깊은 재가 선객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는 화두 공부도 지도해주고 있다. 무학 법사로부터 재가자들의 선 공부 방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선(禪)이란 무엇인지요. 그리고 수행시 주의점이 있다면?
“선은 삶이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삶이 선이라고 한다면, 어묵동정에 선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지요. 삶 아닌 것이 없는데 왜 선을 하느냐 하면 고통없이 즐겁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선문답과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은 선지식의 점검에 생명력이 담겨 잇습니다. 특히 화두의 문답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단독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문답을 공개석상에서 토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화두의 답을 절대로 파설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깨닫기 위해서는 어떻게 닦아야 할까요.
“각자의 수행법으로 공부하되 불자라면 누구나 부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믿고, 올바른 이해를 하고, 실천한다면 누구나 무상정등정각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선에서는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요? 초기 선에서는 화두가 없는데요, 꼭 화두를 들어야 하는지요?
“인간은 누구나 부처의 지혜와 덕성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체법이 불법 아닌 것이 없고 또 본래불이니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의 뜻은 우리에게는 현재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 탐진치 삼독 때문에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뿐입니다. 즉 수행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이 바르게 수행해서 삼독을 멸하고 본래의 참모습을 자각해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물론 꼭 화두를 들어야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만법(萬法)이 유식(唯識)’이라면 나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까?
“이 마음이 항상 있다는 견해는 상견(常見)이고, 없다고 하면 단견(斷見)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법은 공(空)하다고 관하라고 합니다. 마음은 공이구나 하는 견해에 빠지게 되면, 다시 친절하게 ‘만법이 유식’이라고 할 수 밖에 없겠지요. 나 이외 아무것도 없다는 또다른 삿된 견해에 빠지면 더욱 불교와 거리가 멀어지겠지요.”
▲‘본래 부처’이며 중생가 부처가 둘이 아니라고 한다면, 왜 중생이 생겼으며 개체적인 자아가 생겨났을까요?
“무명으로 인해 중생이 생겼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중생의 실상(實相)을 이름하여 부처이며 하나라고 합니다. 개체적인 자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생이 부처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무엇인지요?
“질문 속에 답이 있습니다. <육조단경>에서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을 때 그대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라는 말을 듣고 혜명이 언하에 본래면목을 깨달았습니다. 본래면목을 진아, 본심, 본성, 불성, 주인공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핵심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심경에 우리의 참모습을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합니다. 무상하여 실체가 없는 모습을 ‘공’이라 하고 인연따라 나타나는 모습을 ‘색’이라고 합니다. 유무를 분별하지 않는 무분별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재가자들은 생활 속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불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은 삶뿐입니다. 탐진치 삼독의 무명을 멸하여 즐겁게 본래의 모습과 같이 살기 위한 불교 공부입니다. 재가자들도 선지식을 만나서 바른 가르침을 받고 바른 실천만 한다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학인이 공부할 때 가장 유의할 점은 무엇이며,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선지식을 만나서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며 항상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하심하며 적은 선이라도 매일 실천하며 삼보에 귀의해야 합니다. 아함경부터 공부하고 자신있는 내용도 꼭 선지식의 확인을 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