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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명 스님 법문-2
【큰스님과의 대화】 안적사 회주 덕명 스님 287호 [2000-09-27]

“우주의 근본은 물질 아닌 마음”

무슨 일을 하든
일에 끄달리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그 일의 주인돼야

*약력
·1926년 울산 生
·51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은사로 득도
·해인사 범어사 강원에서 공부
·74년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78년 범어사 주지
·80년 부산불교연합회 창립, 초대회장 역임
·97년 <범망경보살계본> 엮음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부산 기장군 안적사에 주석

안적사로 덕명 스님을 친견하러 가는 길에는 대상을 구별치 않고 평등하게 내리는 가을 햇살이 바람결 따라 빛을 더하고 있었다. 깊고 깊어 몇 굽이를 돌아왔는지도 모를 길의 끝에서 마주친 안적사는 물속처럼 고요하고, 그곳에는 덕명 스님의 지난 30년이 잠겨 있었다. 신라시대 원효스님에 의해 세워진 이곳 복원하는 일을 수행삼아 매진해 오신 덕명 스님께 물질의 한계를 넘어 마음으로 사는 삶의 지혜를 여쭈었다. 절 마당에 선 3백년 된 느티나무를 가리키며 스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거목의 가지와 잎이 물질이라면 그 뿌리는 마음이라고. 마음으로 사는 삶이라야 어떠한 역경에도 부러지지 않는 거목이 될 수 있다고.

─현대는 과학과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현대인들은 온갖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나친 물질 위주의 삶으로 본성을 찾지못하고 무명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물질에 지나치게 치중한 생활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기 자신의 근원인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할 텐데요.

▲과학자들이 깊은 연구를 하고 학술적으로 밝혀 낸 것들이 오히려 물질로서는 더 이상 설명이 안 된다는 것으로 결론이 가고 있어요. 그것은 물질의 작용만으로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물질의 근원이 마음인가 보다고 막연히 추측을 하고 있지만 부처님께서는 벌써 몇 천년 전에 우주의 근본이 마음이라고 설파하셨지요. 그러니 앞으로 과학이든 물질이든 그 근본인 마음을 떠나서는 반쪽에 불과합니다. 물질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으로 대처를 못하는 것이 생기게 되어 있고 또 그로 인한 문제점은 얼마든지 생길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 모든 것의 근원인 마음을 밝히는 일이 중요합니다. 불교의 기본 가르침도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자기 자신을 밝혀 알라는 것 아닙니까? 모든 것의 근원인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잘 활용해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야 할 줄 압니다. 출가, 재가자를 막론하고 또 지식이 많든 적든, 돈이 있든 없든 모든 것에 걸림이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부처가 되는 공부입니다. 모두에게 다 평등한 것이죠. 그러니 우선 내가 나의 근원인 마음을 밝히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원은 사람으로 치면 척추의 역할을 합니다. 내가 나를 밝혀 기필코 성불하고 말겠다는 서원이 간절해야 바로 설 수가 있어요. 그 서원을 중심으로 세우고 확고한 신심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면을 향하는 탐구력을 잃지 않아야 자신의 근본인 마음을 증득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물욕을 경계하는 철저한 무소유에 있지만 현실 생활은 재가자는 물론 출가스님들마저 물질로 평가 받고 좋은 차를 타고, 큰 절을 가져야만 대접을 받는, 경쟁과 소유욕으로 악착같이 많이 갖고 좋은 걸 갖고 남보다 우월하고자 하는 물질위주의 생활에 점점 침잠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의 아상이 더 커지고 갈등이 심각해 지는 것이 아닐까요.

▲물질을 여읜다는 것은 바로 아상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상을 버리는 수행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출가 스님들만이라도 철저하게 나를 버리는 수행을 통해 물질의 세계를 초월해 대중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물질과 정신이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지만 물질에 한번 길들여지면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큰스님이라 하면 많은 상좌를 거느리고 좋은 차를 타고, 많은 신도들을 거느리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보편적으로 인식들을 해요. 스님들이 돈을 좋아하고 그것을 좇게 되는 이유도 큰스님 대접을 받고 싶기 때문에 자연 그렇게 되지 않나 싶어요. 그러나 이것은 수행과는 정반대의 양상입니다. 이러한 병폐를 없애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발심을 해서 공부를 하고 지혜를 만들어 물욕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진정한 수행자는 율을 의지하면서 율법대로 살아가는, 또 다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올바른 수행심을 갖고 정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십계만 잘 지켜도 그 사람은 수행 잘하는 사람입니다. 계,정,혜 삼학이 있듯이 계를 지키지 않으면 정이 나오지 않고 혜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계를 지키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은사이신 동산스님께서는 너무나 철저한 수행자셨기 때문에 스님의 생활을 보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새벽 두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예불을 보시고 정진하시고 또 빗자루 들고 도량을 청소하시니 일상생활이 그대로 수행이었지요. 스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참다운 수행자의 모습으로 살아야 겠다고 여러번 발심을 하곤 했죠. 요즘 초발심을 일으키고 공부를 지어가는 이들도 진정한 수행상을 스스로 정립하기 어려울 때는 앞서가신 역대 조사나 존경하는 선배 스님들을 모델 삼아 자기 스스로를 담금질해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닥치는 경계와 고통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태풍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병으로 인한 고통, 가난 등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역경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헤쳐나가야 하겠습니까?▲30년을 이곳에서 살았는데 처음에는 건강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어요. 10년 불사를 하면서 신경을 너무 쓰다 보니 병이 났어요. 불사에 관련된 여러 가지들에 내가 마음을 뺏겨서 휘둘리니까 몸에 병이 온단 말입니다. 그 불사를 내가 경영해 나가면 되는데 가만히 돌아보면 불사에 내가 말려 들어서 나를 잃어 버렸어요. 나를 잃어 버리면 모든 것을 조화롭게 운영해 나갈 수가 없으니 자연히 몸에 병이 오게 된 것이죠. 그때는 설봉선사, 경산선사, 고암, 무불선사 등 여러 선사들의 기도처였던 이곳을 한번 복원해 보겠다는 의지로 그렇게 했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불사의 주인이 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세상의 모든 일이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재해를 당했다 하더라도 그것에 온통 자신의 마음을 뺏겨 버리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더할 뿐입니다. 태풍이 불면 일년동안 땀흘리며 농사지은 곡식의 수확이 엄청나게 줄어 들어 안타까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태풍은 자연의 오묘한 원리에 의해 일어나는 작용입니다. 또 태풍이 없다면 여러 가지 생기게 되는 자연적인 문제점들이 있어요. 그러니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면서 자신에게 닥쳐온 고통이나 어려움을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여겨 긍정적으로 쓸 줄을 알아야 합니다. 큰 태풍 속에서 배를 운행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이라면 순풍이 불 때의 운행은 쉽게 할 수 있는 이치입니다. 이처럼 당장은 폭풍치는 것이 어려워 포기하고 싶겠지만 그만큼 힘을 키우게 되면 나중에는 수월하게 세상을 살 수 가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기게 되어요. 그러니 순간 순간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슨 일에든지 너무 빠져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번다고 흥청망청 다 소비해 버리고, 또 그러다 돈이 안 벌리면 왜 이런가 온통 고심하고 그러니 어느 한 순간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관조하는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어떤 일을 당했을 때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죠. 닥친 일에 온통 마음을 뺏겨버리니 그 일을 감당할 힘이 없는 거죠. 아까도 내가 말했죠. 불사를 하는 사람은 불사의 주인이 되어야 하듯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신이 그 일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일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살이에서 닥치는 모든 경계의 주인이 되어 대처해 나가 보세요. 그것이 자연 재해든, 가난이든, 병고든, 그것에 휘말리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자신의 중심만 잃지 않고 있다면 그 일이 자신을 망가뜨리지는 못하는 법입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다 그것의 혜택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사람들은 불편을 참지 못하고 부족감을 느낍니다. 제2의 IMF가 올거라는 불안심리도 있고, 경제 파동이후 고유가 시대를 맞아 석유파동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질적 부족함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고 지혜롭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는 없을까요?

▲사람에게는 양면성이 다 있습니다. 갖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허영심도 다 있습니다. 배고프다가 돈을 벌게 되니 허영심과 사치심이 늘고 자신을 과시하려는 이들도 많아요. 그러니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는지 살피지도 않고 흥청거리며 과소비를 하고,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빈곤해지고 그렇게 지내왔어요. 경제 성장을 했다고 너무 허황된 생활을 해오다가 얼마 전에는 IMF라는 경제난을 맞아 얼마나 어려움들을 겪었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악순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물질 성장은 어느 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면 정신적인 성장도 물질적 성장과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잘사는 나라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이 선진국이 되어야 해요. 함께 사는 삶, 자신의 이익보다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들, 이것이야말로 정신적인 선진나라의 표상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가 서있는 이 땅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깊이 자각해야 합니다. 나만 잘살게 되었다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도 둘러보고 주위와 더불어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너와 내가 따로 없다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현실 생활 속에서는 너와 나의 구별로 인한 갈들을 많이 겪고 서로 경쟁 상황에 놓이게 되기도 합니다. 나와 상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원만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생과 사가 둘이 아니고 유와 무가 둘이 아닌 것이죠. 그러나 둘이 아닌 가운데 또 분명히 둘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이 아닌 것만 주장한다면 그것 또한 반쪽입니다. 둘이면서도 둘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와 내가 엄연히 둘이지만 따로따로 살수 없듯이 말입니다. 우리 몸뚱이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오장육부를 살펴봅시다. 심장, 간, 위 등등이 각각 하는 역할이 다르지만 어느 한 장기라도 제 역할을 못하게 되면 모든 장기가 다 탈이 나고 말아요. 그러면 우리 몸뚱이는 무너지고 마는 것이죠. 그것처럼 우리 개개인이 각각 다르게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한 사람이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둘이면서 또 둘이 아닌 도리입니다. 이 이치만 마음 깊이 새긴다면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든 잘 활용해서 지혜롭게 살 수가 있어요.

─스님께서는 방생회를 만들어 인간 방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간 방생의 참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방생은 생명 있는 것을 놓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물고기나 미꾸라지를 일부러 사서 그것을 강이나 바다에 놓아주는 것으로 방생을 하는 경우가 많아 환경문제나 그 밖의 여러 문제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사서 상류에서 놓아주면 하류에서는 다시 잡아 팔기도 하니까 지금 하는 방생은 제대로 된 방생이 아닌 경우가 허다해요. 오히려 물고기들을 이중삼중으로 괴롭히게 될 뿐이죠. 방생은 말 그대로 모든 생명 있는 것을 놓아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산 것이 어찌 물고기 뿐이겠습니까? 모든 살아있는 것을 이롭게 하고 놓아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귀중한 것이 사람의 목숨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인간이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방생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자기 자신은 어떤가 돌아보십시오. 그러면 자신이 탐진치 삼독에 물들어 자신을 잊고 방황하며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요. 그러니까 그런 방황하는 마음을 딱 바로 잡고 올바른 삶을 이어간다면 부처님은 아마 박수를 보낼 겁니다. 그러나 탐진치 삼독에 얽매여 정신 못 차리고 갈팡질팡한다면 그게 제대로 사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참다운 방생은 탐,진,치 세 끈을 가지고 얽어 매어 놓은 자기 마음을 풀어 놓은 것, 그것이 올바른 방생이라고 항상 이야기 합니다. 자기의 올바른 길을 찾고 지혜를 키워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 이상의 방생은 없습니다.

인간방생이라고 거창하게 생각할 것이 없어요. 하루 착한 일 한가지만 생각하고 실천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루 한가지만 하면 그것이 모여 한달이면 30번, 일년이면 365번이 되고 그것이 십년 모이면 엄청난 선행을 쌓게 되고 평생 모이면 자신을 방생하는 지혜가 터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나와 남을 위한 참다운 일일일선이 생활 전체로 이어지면 그것이 방생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나누어 주고 희망을 심어주는 생활, 그것이 바로 생활 속의 인간 방생 실천입니다. 가난한 삶을 살지라도 마음에는 가난이 없습니다.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고 현재의 생활을 영위해 간다면 그 사람이 어떤 조건 속에서 태어났더라도 귀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모든 것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이 마음이란 놈을 제대로 알아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물질의 세계를 더욱 값지게 활용하는 지혜를 키워야 할 것입니다.
천미희 기자 | mhcheon@buddhapia.com |
2003-12-02 오후 1:26:00
 
한마디
의견달게 뭐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나마 스님법문을 들을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스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요. 찾아뵙고 싶지만 너무 죄많은 제가 어떻게 스님앞에 마주 하겠습니까. 시간내서 다시한번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2004-04-04 오후 9: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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