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계에 젊은 불자 가수들의 파워가 두드러지고 있다. 불자이면서도 개인 프로필이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불자’라고 밝히기를 주저하던 예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프로필에도 빠짐없이 종교를 ‘불교’로 기재하고, 불교적인 사상을 자신의 음악활동에도 반영하는 등 적극적인 불자 가수들이 눈에 띄고 있다.
좌우명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존경하는 인물은 성철 스님과 대공 스님. 이 프로필의 주인공은 힙합 뮤지션 MC 스나이퍼(25ㆍ본명 김정유)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힙합풍으로 리메이크한 타이틀곡으로 1집 때부터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1집 10여만 장, 2집 ‘초행(初行)’도 발매 첫 달 3만여 장이 판매되는 등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수다. 현재 그의 팬 사이트 회원수는 2만 6천명을 훌쩍 넘어섰다.
김정유 씨는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사찰을 찾곤 했던 영향을 받아 지금도 영월 법흥사, 영주 부석사 등의 절을 종종 들른단다. 이처럼 불교에 심취한 김 씨의 앨범에는 불교적 철학관이 스며든 사회 풍자곡이 주를 이룬다. 뛰어난 음악 실력을 인정받아 최근에는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여한 바 있는 세계적인 일본 뮤지션 류이치 사카모토와 함께 앨범 작업 중이다.
1997년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로 가수에 데뷔한 은지원(25) 씨는 솔로가수로 변신을 꾀해 최근 힙합풍의 앨범을 내놓으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어린시절 외국에서 살면서 잠시 다른 종교도 접해봤다고 하지만 은 씨의 프로필에는 ‘불교’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의 뿌리인 불교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듯 2002년에는 불교 편집 앨범 ‘인연’에 참여, ‘이제’라는 곡을 부르기도 했다. 은 씨는 올 가을부터 MBC 라디오 DJ, 영화배우 등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기도 하다.
아예 구성원 전체가 불자인 그룹도 있다. 지난 해 ‘낭만 고양이’로 청소년층 뿐 아니라 30~40대 등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은 체리필터(조유진ㆍ26, 손상혁ㆍ26, 정우진ㆍ27, 연윤근ㆍ26). 얼마 전 모 음악채널 케이블과의 인터뷰에서 멤버 전체가 불교신자라고 답해 화제가 됐다. 특히 멤버의 조유진 씨의 취미는 더욱 특이하다. 그녀의 취미는 ‘불경 독송’. 개신교 재단의 고등학교를 졸업해 다른 종교를 지닌 걸로 종종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일단 조 씨의 취미를 알게 되면 그런 오해는 자연히 사라진다.
이밖에도 서울대 출신으로 데뷔 때부터 화제를 모았던 남성 듀오 UN의 김정훈 씨도 신세대 불자가수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가수들이 불자냐 아니냐에 따라 음악성과 인기가 좌지우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가수 등 유명인들의 종교에 유독 관심이 많다. 네이버나 엠파스 등 인터넷 지식검색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질문 중에 하나는 스타들의 종교다. 이는 내가 좋아하는 우상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은 그들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MC 스나이퍼의 팬사이트에서는 “솔직히 그 전까지는 종교가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스나이퍼 앨범을 접하면서 불교 쪽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지게 되어서 학교의 불교동아리에 가입했다”(닉네임:빈)는 등 불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어 신세대 불자 가수들의 신행은 청소년 포교에 보이지 않는 힘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