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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을 보호하는 ‘부릅뜬 눈’
"먼 길 오느라 고생했소잉~."
"오는데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그래도 오는 길에 고려시대 탑도 보고, 마이 건졌다."

11월 22일 토요일 밤 어둠이 짙은 시각. 남도 땅 끝, 해남 대흥사 유스호스텔에 하나 둘 모여든 온라인 동호회 ‘문화유적 답사회’(http://cafe.daum.net/culturalassets) 회원들의 말투가 제각각이다. 경주, 광주, 대구, 목포, 부산, 서울, 전주, 화성 등 출발지는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발길이 해남 땅으로 향한 이유는 단 하나. 책으로만 봤던 해남 땅의 문화재가 ‘눈에 선해서’다.

23일 아침 6시. 숙소는 벌써 답사 준비로 분주하다. 어제 새벽 2시까지 이어졌던 답사 회의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출발준비를 마쳤다.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피곤하긴 하지만, 좋아서 왔는데 저 때문에 일정이 늦어지면 않되잖아요”라고 대답하는 회원들. 강요하는 이가 없어도,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는 평소의 늦잠도 오늘만은 예외다.

답사가 시작됐다. 10시간 동안 대흥사와 미황사를 중심으로 7곳을 답사할 예정이어서, 발걸음을 제촉한다. 유적 하나라도 더 담고 싶은 욕심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이미 프로 답사꾼들이다.

첫 답사지인 대흥사로 향하는 길. 하얀 입김이 초겨울 새벽녘 찬바람에 흩어진다. 대흥사입구에서 답사팀의 발길은 오른쪽 부도밭으로 향한다. “오늘따라 부도랑 비석이 너무 커보인다.”(김향숙 29 전북대 지질학과) 큰 스님의 위엄을 닮은 20여기의 부도들 가운데서 답사팀은 책을 펴들고 서산대사 부도를 찾는다. “이거다.” “아니다. 서산대사 부도는 팔각원당형이라 그랬는데 그건 아니잖아.” “찾았다. 여기 ‘청허당’이라고 써있네.”

“대흥사는 대둔사(大芚寺)라고도 부르는,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요. 절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고, 남북으로 구분된 대흥사의 독특한 가람배치나 천불전, 꽃살문 등을 꼭 보고 가야겠지라이...” 오늘 모임을 주최한 전라방장 강민구(26, 목포대 사학과) 씨의 설명이 시작됐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약한 불빛에 의지해 대웅전을 둘러보지만, 구석구석 놓치지 않으려는 답사팀.

“이게 그 유명한 대흥사 돌사자 머리 아이가. 근데 사람들은 다 앞모습만 보고 가는데 뒷 머리 모양도 특이하거든”하며 사진을 찍는 답사팀의 주인장 김환대(28) 씨. 경주 동국대학교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고 경주문화유산답사회 등 답사팀을 운영하고 있는 김 씨는 자신이 본 모든 유적을 카메라에 담는다.

“야~ 날 밝았다. 천불전 꽃살문 찍으러 가자”(주동식 43 회사원) 대흥사 천불전 꽃살문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등장해 유명세를 탄 사찰 문양 가운데 하나다. “꽃살 문양 하나하나가 다 다르고, 참 이쁘지예?”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순간이다.

이들의 문화유산답사는 단지 문화재를 보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어, 저기 석탑 해체해 놨네. 이건 허가 받고 하는거 맞나?”(곽효동 26 회사원) 대흥사 경내 한 구석에 해체한 석탑을 본 답사팀은 이 석탑 해체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은 것인지 아닌지 알아봐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끔은 사찰 측에서 불사의 하나로 자체적으로 석탑 해체 공사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김환대)

주인장 김 씨는 “저를 비롯해서 문화재청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요”라고 말한다. 문화재 훼손이 발견되면, 신고하고 문화재청이나 지자체 문화재과에 확인해 보라고 독촉하기 때문이란다. 답사팀은 두 번째 답사지인 미황사에서도 최근 신축한 일주문이 미황사의 전체 경관을 망친다는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2001년 4월 만들어진 ‘문화유산 답사회’는 지금까지 80여 곳에서 전국답사를 진행했다. 다른 답사회들과는 달리 각자의 지방에서 출발해, 서울에서 동시에 출발하는 다른 답사팀들과 비교해 운영이 쉽지 않지만, 2년 넘게 답사회가 이어진 것은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회원들이 있어서다. “대학 다닐 때부터 답사를 다녔어요. 문화유산을 보면, 우리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거든요”(곽효동) “저는 산성을 좋아하는데요 굳이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답사를 다니는 건 아니에요.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답사로 다 날려 보내고, 다음 한 주를 준비하지요.”(한필구 31 회사원)

대흥사에 이어 미황사, 땅끝 마을, 무위사, 월남사지, 녹우당, 강진 초동마을 등을 돌아본 답사팀은 다음 답사를 기약하며 다시 각자의 길을 나선다. 수백 년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 문화유산 사랑을 통해 자신 사랑하는 방법도 배운다는 이들. 답사를 통해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부릅뜬 눈’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여유를 찾기도 하는 이들은 내일도 우리 땅을 지켜온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나선다.
오유진 기자 | e_exist@buddhapia.com
2003-11-29 오전 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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